^*^ 추 억/산행 및 여행

2014년, 활력과 위로의 길 대관령.

소우(小愚) 2014. 1. 27. 17:55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일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겨울산행 역시도 의도한 대로 되는 법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요즘은 특히 중국 발 미세먼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산에 가도 맑은 날을 보기 어렵다.

   1월인데도 어제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여니 진눈깨비가 꽤 많이 내리고 있었다.

   <함박눈이면 좋을 텐데.>하면서 침대에 뒹굴다 창문으로 스며든 햇살에 밖을 보니,

   어느새 눈이 서서히 그치고 있었다.

 

   문득 대관령의 설경을 보고파 산행차비를 서둘러 했다.

   지금이라도 가면 나뭇가지마다 설화가 피어났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시내를 빠져나와 성산에 이르렀지만 전날 비가 와서인지 아니면 눈이 내리지 않았는지,

   앙상한 나뭇가지만 하늘거린다.

 

   하지만 대관령 산자락을 쳐다보니 죽죽 늘어선 능선마다 온통 하얗다.

   그러나 반정을 지나 대관령에 이르자 내 차를 따라온 듯 해무가 끼어 아쉽게도 시야가 흐릿하다.

   겨울등산지로 선자령이 너무 유명세를 타서인지,

   구 대관령휴게소자리에는 온갖 차들로 넘쳐난다.

 

   겨우 휴게소 공터 한쪽에 차를 주차하고

   대관령 정상에 올랐지만 강릉시내는 흐릿한 안개 속에 숨어버렸다.

   출발할 때만 해도 해가 반짝 나 그야말로 최고의 설경을 감상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참나무 숲에 도착하니 나뭇가지마다 설화가 곱게 피어있다.

   회백색 표피 위로 소복이 눈이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린다.

 

   나는 묵색이 살아있는 설경을 좋아한다.

   그래서 눈이 만든 설화보다 안개가 얼어붙은 만든 상화가 더 좋다.

   강릉의 따뜻한 해풍이 만든 물안개가 대관령 산자락을 타고 오르면서 나목들마다,

   천상의 선녀에게 하얀 날개옷을 입히듯 투명하게 피어나 햇살이 부셔져나가는 환상의 쇼가 펼쳐진다.

   그 모습이 그리워 눈이 내린 날이면 틈틈이 대관령 길을 오르지만 그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

 

   대관령 도로 정상에 오르면 겨울 등산을 즐길 수 있는 두 갈레 길이 나온다.

   한쪽은 선자령이요 다른 한쪽은 능경봉과 제왕산으로 가는 길이다.

   선자령은 광활하고 드넓은 설원과 풍력발전소의 날개 짓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하지만 난 선자령보다 제왕산으로 가는 참나무 숲길과 대관령산세를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이 곳 능선 길을 더 좋다.

 

   여름과 겨울 더위와 추위가 겹치는,

   이 능선 길을 걷노라면 자연스럽게 인생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그렇게 걸어도 일상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길이 있어 나그네가 있는 것처럼 삶이 있어 인생이 있음은 분명하다.

   이 길은 자연과 벗함으로써 자신의 못남을 탓하기 보다는 순화시키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다.

   이 길을 걸으며 강릉시내와 크고 작은 봉우리들과 죽죽 그어진 산자락을 한번 바라보라.

   아무리 큰 산도, 아무리 넓은 바다도 그저 같은 하늘 아래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메말라버린 억새 대공위로 하얀 눈이 덮였다.

   고사목 죽은 앙상한 나뭇가지위로 하얀 눈꽃이 피어났다.

   바위위에도 푸른 상록의 소나무에도 아직 떨어지지 않은 진달래 꽃받침에도 눈이 소복이 쌓였다.

   눈은 그저 대자연의 품에 단지 안겨있을 뿐인데 내 마음의 눈은 그것을 아름다움이라 부른다.

   이처럼 대관령 이 길은 항상 나에게 새로운 활력과 위안을 선물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