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 억/산행 및 여행

2013년, 산행 10년의 추억

소우(小愚) 2013. 5. 24. 15:03

 

 

 

 

 

  한계는 누가 가르쳐줘도,

                                    스스로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다.

 

   아직 몇 달을 더 채워야 하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 지 만 10년이 가까워진다.

   내가 왜 그 많고 많은 취미 중에 하필이면 등산을 취미로 했을까 싶지만은,

  무슨 취미든 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 계기는 2004년 중학교 동창회 카페를 자주 들락거리다,

   동창회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동창들 상호간의 친목을 다질 필요가 있어,

   동창회 산하에 <77산악회>라는 등산모임을 만들면서부터이다.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몇몇이 남아 그 명맥을 이어가고는 있지만 사실상 해체된 상태나 다를 바 없다.

 

   등산은 마음만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산행을 하고 싶어도 몸이 허락하지 않으면 갈 수 없다.

   그리고 산행은 처음부터 혼자 힘으로 시작하여 그 끝도 혼자 힘으로 마쳐야 한다.

   무릎이 안 좋은 사람도 있고, 높은 곳에만 가면 공연히 숨이 차는 사람도 있고,

   심장이 안 좋거나 기온에 민감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행은 항상 자신의 몸 컨디션에 맞게 선택해야지 제 3자가 나서 동참을 강요할 수 없다.

 

   또한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툼이 생길 때도 분명 있다.

   그러므로 산행은 끌어가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뒤에서 챙겨주고 밀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마땅한 대안 없이 문제점만 지적하거나, 우월적인 대우를 받으려고 한다든가,

   개인적 이득을 원하면 그 모임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 산악회 역시 처음 시작할 때는,

  멀리 있는 동창들조차 참석할 정도로 활기찼으나, 산행횟수가 더해 갈수록 점차,

   서로간의 갈등만 증폭되고 빠지는 사람들이 늘어나,

  결국 카페조차 문을 닫아야 하는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단체라는 것은 어쨌거나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인정은 기본이다.

   모두들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임에도 그 친구에게서조차 대우를 받으려고 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그리고 취미나 운동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

  남을 위하거나 남에게 잘 보일러는 목적을 가지고 동참해서는 곤란하다.

   즉, 본인의 필요에 따라 참여했다면 그로 인한 어느 정도의 불편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자신의 불편함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어째든 산행을 한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 버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시작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나와 함께 산행을 해 준 고마운 친구도 있다.

   비록 남자동창들은 이런저런 이유도 다 떠나갔지만,

   그 여자동창들은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묵묵히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우린 그렇게 어울려 10년 동안,

  강릉 주변의 산은 속속들이 아마 거의 안 가본 산이 없을 것이다.

   그 중 가장 힘들었던 산은 제천의 월악산과 울진의 응봉산이고,

  가장 많이 간  산은 역시 설악산이 아닐까 싶다.

 

   겨울이면 엉덩이썰매를 즐기던 오대산 태백산과 선자령바우길,

   항상 새벽같이 떠나야 했던 설악산의 등산코스들, 그리고 정선 영월의 백운산, 가리왕산,

   15년 만에 처음 개방되었던 소금강 아미산성코스, 저수지의 풍경이 일품이었던 횡성의 어답산,

   지루함 뒤 절경을 보여줬던 운무산과 석병산,

  신물날 정도로 파리 떼가 달려들던 가리왕산 이끼계곡과 삼형제봉,

 

   봄이면 산나물을 뜯던 노추산, 발왕산,

  눈이 쌓여 길조차 잃고 움막에서 추위를 피했던 피래산과 칠성산, 장군바위산, 곤신봉,

   등산 할 곳 없을 때 찾던 인근의 대관령 옛길과 제왕산, 능경봉, 고루포기산,

  그리고 대공산성코스와 어명절 코스,

 

   더위를 먹고 힘든 산행을 했던 두타산 고적대코스와,

  무릉계곡의 두타산, 청옥산, 하늘문(관음암)코스,

   쉰 개나 되는 우물을 가진 두타산 박당령 밑 쉰움산, 늘 실망하면서도 찾게 되는 치악산의 봉우리들,

   얼마전에 다녀왔던 노루귀와 복수초와 같은 야생화의 보고 방태산과, 길을 잃고 해맸던 금당산,

   때로는 추위로, 시간이 촉박하여 굶기도 하고, 때로는 발이 부르트고 쥐가 나는, 

   한계상황에 처할 정도로 힘든 산행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산은 누구와 어떤 사연으로 오르는가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산은 자신의 육체와 의지라는 정신력으로 한계를 극복했을 때,

  비로소 정상이라는 열매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왜 그렇게 힘들게 산에 가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인고의 순간들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한계는 아무리 누가 가르쳐줘도 스스로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산행만큼 어느 누구의 간섭 없이 할 수 있는 일도 드문 때문이기도 하다.

 

   꼭 높은 산이 아니면 어떠랴.

   꼭 이름 없는 무명산이면 어떠랴.

   꼭 기암절벽이나 절경을 품지 않으면 어떠랴.

   산을 좋아하고 그 산이 주는 아름다움과 그 마음을 잊지 않으면 그만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산을 통해 손을 잡아주고 마음을 나눠준,

  함께 해준 동행자들의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을 잊지 않으면 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