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서민의 시선

갑을 관계와 은근한 갈굼

소우(小愚) 2013. 5. 17. 09:58

 ▶▷ 갈굼보다는 대화가 먼저다.

 

    갈굼은 갈구다의 준말로 주로 군대에서 쓰는 은어라 할 수 있다.

    그 단어의 뜻은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핀잔을 주어 스트레스를 유발시키는 일련의 행위의 총칭이다.

    이 말의 뜻에서 보듯이 갈굼은 육체적이기보다는 심적인 타격을 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폭력보다 더 지독하고 저질스러운 행위라는 것이다.

    차라리 욕이라도 하면 같이 맞붙기라도 한터인데, 은근히 말을 비비 꼬거나 돌려서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름을 부르면 되는데 <여이 라든가 어이, 혹은 야.>와 같이 은근슬쩍 무시하듯 부르거나,

    대답을 하면 못들은 척 다시 부르고, 스쳐지나가듯, 또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듯, 엉뚱한 딴 곳을 바라보며 말을 건네기도 한다.

    그래서 화라도 낼라치면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아예 그런 사실조차 없다는 듯 외면하거나 도망쳐버리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갈굼은 주로 강자가 약자에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저지른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정당성을 주장해도 그 뜻을 관철하기란 쉽지 않다.

 

    갈굼의 원인은 외부적인 것과 내부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외부적인 것으로는 주로 질투와 같은 시기심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윗사람의 의견이나 생각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독선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조직의 지휘체계를 무시하고 윗사람에게 아부를 일삼아 주변의 다른 사람에는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경우다.

    이처럼 갈굼의 원인은 남의 탓보다는 자신의 탓이 더 크다는 사실일 것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항상 웃음으로 맞을 수는 없다.

    만나기 전에 다른 일로 화가 나 있을 경우도 있고, 또 상대방 역시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은 자신과의 만났을 때 상대방이 기쁘게 맞아주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보다 힘이 없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대접받음을 당연시 여긴다는 사실일 것이다.

 

    요즘 갑을관계가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그동안 항상 갑에게서부터 당하기만 하던 을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특히 아직도 조선시대 유교적인 양반문화가 잔재해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가진 자의 힘이 유난히 크게 작용하였음은 불문가지다.

    그동안 골목상권을 유린한 대기업의 횡포에서 알 수 있듯이 알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가진 사람들은 을의 억울함과 항변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갈굼은 대부분 모호하다.

    당하는 사람은 죽을 만큼 괴로운데 괴롭히는 사람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이익을 얻기 위한 일상적인 행위라고 여기기에 죄의식조차 갖지 않는다.

    솔직히 불합리한 갑을 관계는 이미 사회전반에 걸쳐 만연되어 들어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은 돈이 돈을 벌고 부가 세습되는 악순환과, 빈부의 격차가 존재하는 한 아마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대화라는 좋은 수단을 가지고 있다.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나 불만족한 것이 있으면 직위고하에 상관없이 확실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사를 확인한 후 조율을 통해 서로의 역할을 나누어 일을 하면 된다.

    용서와 타협이 힘을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듯, 불만이나 불평 역시도 힘없는 자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세상은 늘 함께 할 때 시너지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