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나의 명상록

죄란 크고 작음이 없다.

소우(小愚) 2010. 8. 3. 12:39

 

◆ 죄란 크고 작음이 없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죄를 짓고 산다.

어쩌면 너무나 많은 죄를 지어 양심이 의식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양심이 꺼릴 정도로 알면서 죄를 짓고,

또 어떤 때는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죄를 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죄는 크고 작음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작은 죄를 지었으니 용서가 될 것 같지만,

죄를 한번 지으면 용서의 몫은 자신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한번 지은 죄 값은,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것이다.

 

죄는 정육점에서 파는 고기와 달라,

죄질이 약한 것은 작은 근수가 나가고,           

죄질이 극히 나쁜 것은 많은 근수가 나가는 것이 아니다.               

 

네가 이만큼 죄를 지었으니,

나도 같은 크기의 죄를 저지르면 갚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둘 다 죄를 짓는 것뿐이다.               

이처럼 죄는 누구에게나 공평할 수 없고 정확하게 값어치를 정해 갚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 죄에 대한 스스로의 인정이며 용서를 구하는 마음이다.

죄지은 당사자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의 선을 행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지은 죄를 상쇄하는 길이다.

 

그렇다고,

현실이 아무리  냉혹하다 해도,

수많은 죄를 통해 얻은 승자의 위치에 서서,

지은 죄는 푸는 것은 옳지 못하다.

 

사랑에 대한 마음도 그렇다.

여자로서 남자로서 사랑을 대함에 있어서는,

항상 진실할 수 있으나 결혼을 할 때는 진실만을 내세울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는 서로에게 있어,

<내편>이 될 수 있으나 어머니로서 아버지로서는 그럴 수 없다.

 

이처럼 사람은 무엇인가 소중한 것들을,

지켜야하는 상황에 처하면 자신의 입장에서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양심마저 버리게 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말 할 것이다.

양심만큼 소중한 것이 없을 것이라고.

 

그러나,

현실을 항상 옳은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과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분명 양심은,

가치의 중심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양심만으로 세상이란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도 틀림없다.

그래서 적당한 악과의 타협은 필요악이고 처세술처럼 치부되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처럼 죄는,

남이 알든 모르든지 상관없이,

스스로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짐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