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 억/산행 및 여행

2010년, 강릉선자령(라면의 추억편)

소우(小愚) 2010. 1. 25. 11:05

 

 

 

 

 

 오늘 선자령은 너무나 춥다.

 바람마저 불어서인지 볼에 와 닿는 바람결은 살을 에이는듯하다.

 전번 주 동대산에서의 눈썰매의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인지,

 대관령 옛길 반정에 차를 주차하고 골짜기를 따라 오르는 내내 눈썰매를 탈 곳만 찾게 된다.

 

 나는 등산로 비탈길에서,

 미리 준비한 마트비닐봉지로 잠깐잠깐 눈썰매를 즐겼지만,

 우리 아줌씨들은 체면 때문인지 미루다,

 하산길 대관령과 반정으로 갈라지는 갈림길 비탈에 이르러서야

 결국 누군가 타가 버려둔 비료포대의 강한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엉덩이 썰매의 즐거움을 만긱했다.

 

 누가 뭐라 해도,

 엉덩이썰매의 백미는 비료포대로 타는 눈썰매가 아닐까 싶다.

 같은 비닐이라도 비료포대의 미끄러움을 따라갈 수 없다.

 억지로 타려하지 않아도, 경사가 얕은 비탈이라도 속도감이 주는 스릴를 외면하기 쉽지 않다.

 

 구릉을 따라 내려오는 이 등산로에의 엉덩이썰매는,

 춥고 힘든 오늘의 여정에서의 피로를 말끔히 해소해 주는 듯하다. 

 

 하지만 오늘의 선택은 겨울 산에서의 라면 끓여먹기다.

 꽁꽁 언 체온을 녹이는 것에는 라면 국물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

 오늘 특별이 재숙이가 버너에다 코펠 등 라면을 끓일 준비를 해 왔기에 끓여먹기로 했다.

 

 하지만 선자령은 너무나 춥다.

 선자령 정상까지 반정에서 오르는 내내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라면을 끓일 정도로 잔잔한 곳을 찾지 못해, 

 허기진 배를 달래며 정상을 지나 의야지 마을로 내려가는 참나무 숲 속에 와서야,

 코펠에 물을 붙고 버너에 올려놓았으나 30분이 지나도록 물이 끓지 않는다.

 

 날씨가 너무 추워 가스마저 얼어,

 온도를 높일 수 없어 눈 위에서 30여분을 헛고생만 했다.

 결국 포기하고 하산했으나 라면에 대한 미련을 주체하지 못하고,

 반정에 주차해 있던 차에서 끓여 먹기로 했다.

 

 차 트렁크를 열고 버너를 설치한 후 추운 몸을 녹이며 라면을 끓였다.

 산에서는 그렇게 끓지 않던 물이 5분정도가 지나자 시원하게 소리 지르며 끓기 시작한다.

 스프를 넣고, 라면을 넣고 끓이다 썰어 온 가래떡을 함께 넣었으나,

 코펠이 작아 끓어 넘치려 해 또다시 사람을 애태운다.

 

  결국 라면을 도로위에 놓고,

  타고 온 비료포대로 바람막이를 한 후에라야  맛있게 익은 라면을 어렵사리 대할 수 있었다.

  라면을 끓이기 위해, 남들이 보면 미쳤다 할 정도로 추위 속에서 개고생을 했지만,

  라면을 코펠 뚜껑에 퍼 김치와 함께 한 입 넘기자,

  그 맛은 세상의 어떤 표현으로도 말할 수 없는 감탄 그 자체다.

 

  발을 동동 구르며,

  곱은 손으로 하얀 입김을 연신 불어대며 먹은 오늘의 이 기억은,

  아마 내가 살아가는 일생에서 그리운 추억으로 함께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