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 억/산행 및 여행

2008년, 평창 동대산-두루봉 등산

소우(小愚) 2008. 10. 13. 14:45

 

       

         흔히들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중년이 된 나에게 무슨 특별한 낭만이 있겠는가?

         그저 이렇게 주말이면,

         마음에 맞는 친구와 어울려 자연을 벗 삼아 산행을 함께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물론 건강을 지키려는 나름대로의 욕심이 있지만,

         그것마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살아가는 동안 아프지 않고 남에게

         신세지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때로는 인생살이의 고민이나 친구들과의 관계,

          그리고 부모나 자녀들에 대한 문제 등,

         산행을 하면서 두서없이 나누는 대화들이지만, 마음을 터놓고

         솔직하게 근심을 털어놓으면,

         어느 순간 스스로 마음이 홀가분해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주말에는 오대산 비로봉으로 고향친구들과 어울러 같이 산행 하기로 하였으나  사정이 생겨 부득이 우리 잔챙이 회원

       들만 산행을 하기로 했다.

       새벽에 모여서야 어디로 갈지 잠시 갈팡질팡하였으나 설악의 단풍은 아직 이른 것 같아,

       오대산 종주를 아직 못한 부분을 마주 채우기로 하고 연곡을 경유 송천약수가 있는 진고개로 향했다.

       단풍이 아직 때가 조금 이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송천계곡에 이르자 단풍이 어느새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능선을 따라 내려올 채비를 바쁘고 하고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인 두루봉(해발 1,421)은 등산지도상 거리가 편도 8km, 4시간 50분이 소요되는 등산로다.

       우리는 그동안 상원사->적멸보궁->비로봉->상왕봉->상원사에 이르는 등산로는

       겨울산행 2회에 초겨울에도 한번 다녀왔으나, 이 등산로와 이어지는 두루봉->동대산->진고개에 이르는 길은

       등산한 적이 없어 이번 기회에 오대산 종주에 나서기로 하였다.  

  

       진고개휴게소에서 맞은편 도로를 건너면 동대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와 만나게 된다.

       묵밭을 지나면서부터 동대산에 이르는 1.7km는 단풍의 바다다.

       다소 거친 맛이 있고, 채색이 고르지 못하지만 우거진 숲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햇살에 어리는 단풍들은 너무나 신비롭다.

       다 같은 단풍나무지만 어떤 나무는 붉은 옷을,

       어떤 나무는 노란색 옷을, 어떤 나무는 주황과 다소 오그라드는 갈색의 옷을 입고 있으며,

       또 어떤 단풍나무는 아직 푸른빛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린 단풍의 신비로움에 취해 어느새 해발 1,433m의 동대산에 올랐다.

       동대산에 오르자 동피골계곡에는 하얀 구름이 깔려 구름에 갇힌 산봉우리가 마치 바다에 고적하게 떠있는 섬처럼 보인다.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싶어 디카 화상으로 보아도 숲으로 가려져 촬영할 수 없어

       억지로 동대산 표지석에 올라서서야 일부분을 담을 수 있었다.  

       동대산에서 처음 약 1km 정도는

       이미 활엽수들이 추위와 서리를 못 이기고 낙엽이 떨어져 나목이 되어 다소 쓸쓸한 여운을 남겼지만,

       이 구간을 지나자 차돌박이에 이르는 약 2.5km는

       그야말로 단풍이 주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즐겁고 행복한 가을 산행이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으스러지는 소리와 화살나무, 백당나무의 붉은 열매가 너무나 곱다.

       특히나 높이 7~8m에 이르는 마가목 열매가 지천으로 열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빨간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린 듯 선명하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차돌박이는 신비스러움 그 자체다.

       가을하늘에서 구름이 떨어진 듯이 하얀 차돌이 어른 키 높이 크기로 서너개가 우뚝 솟아있고

       주변에 천연소금을 뿌린 듯 점점이 부서진 차돌이 흩어져 있다.  

       여기서 두루봉 아래의 신목구이까지 2km는

       크고 작은 산을 오르내리며 걷는 길로 나름대로 운치가 있는 힘들지 않는 등산길이다.

       가는 곳곳마다 마주하는 참나무들의 갖가지 형태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 ET를 닮은 커다란 눈과 사람형상의 옹이, 머리가 들어갈 만큼의 커다란 구멍,

       이무기 형상을 닮은 신갈나무가 한가롭게 누워 있다. 

 

       신목구이 주변에는 하얀 자작나무가 단풍의 붉은 빛깔과 어우러져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리고 너무나 청명한 가을 하늘이라 오른편으로 강릉시내가 눈앞에 펼쳐진 듯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문진일까?  강릉일까?  우리들의 설왕설래는 다른 일행의 확인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여기서 두루봉 정상까지 1.2km 구간은 그야말로 된비알이 연이어 있다.

       여기까지 거의 4시간에 걸쳐 올 산행이라 다소 힘에 부친 우리일행을 쉬엄쉬엄 쉬면서 힘겹게 두루봉 정상에 올랐지만

       너무나 실망이 크다.

       표지석 하나 없는 정상에는 이정표만이 우두커니 서있어 여간 을씨년스러운 것이 아니다.  

 

       두루봉으로 갈 때는 모두 즐겁고 행복한 우리들이었으나 되돌아서 오는 길은 너무나 멀다.

       이것이 왕복할 수밖에 없는 승용차를 이용한 산행의 단점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것 역시 우리가 품어야 할 몫인 것을...

       무릎이 시원찮다며 순교 왈 “갈 때는 몰랐는데 왜 이렇게 오르는 곳이 많은 거야.”하고 투덜거리지만

       종림은 묵묵부답이다.

       땀이 이마에 송알송알 맺힌 걸 보니 그녀도 역시 힘든가 보다.           

 

       멀리 진고개산장이 보이자 거뭇거뭇 땅거미가 산을 덥기 시작하고,

       디카 후레쉬가 터지기 시작할 즈음 우리의 아름다운 산행도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