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 억/산행 및 여행

2008년, 설악, 천불동계곡에 가다.

소우(小愚) 2008. 10. 20. 11:50
    강릉에서 설악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오늘은 10월 19일, 걸악제가 열리는 마지막 기간이라 더더욱 일찍 서둘러야

    주차할 공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새벽 4시 30분에 강릉을 출발했다.

    하지만 속초로 가는 길은 아직 어둡고 해무가 깔려 조심스럽게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막상 설악산에 이르자 벌써부터 차량의 행렬이 이어져 멈춰서기를 반복한다.

    이럴 때 꼭 끼어드는 것이 얌체족이다.

    설악산 진입로는 1차선이라 꼬리를 물고 진입할 수밖에 없는데,

    맞은편 내려오는 차선으로 역주행하는 차 때문에 곳곳에서 정체를 빚고 있으니 말이다.

    질서를 지키는 것이 가장 빨리 정체를 해소할 수 있는 길임을 왜 모르는가?

    어렵사리 주차안내원의 인도를 받아 주차한 시간은 6시 30분,  아직 이곳은

    어슴푸레 어둠이 내려 설악의 웅장한 봉우리는 형체만 드러내고, 사람들의 시끄러움으로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서둘러 화장실에 다녀오고 배낭을 점점한 다음 천불동 계곡을 향했다.


    지금시간 6시 40분,

    천불동계곡은 달리 설악골이라고도 한다.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을 중심으로 동쪽을 외설악이라 하며,

    외설악의 입구인 설악동 신흥사의 일주문을 지나 왼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7㎞에 이르는 계곡이 나타난다.

    이 계곡의 중간에 해당하는 비선대에서 오련폭포까지의 약 3㎞의 계곡이 천불동계곡이다.

    계곡 양쪽에 솟은 봉우리들이 각기 모습이 다른 불상 1,000여 개를 새겨놓은 듯해

    금강산 골짜기의 이름을 따서 천불동이라 했다.

    공룡능선과 천화대능선(天花臺稜線) 및 화채능선 사이에 있으며, 설악의 산악미를 한데 모은 듯한 경승지이다.

    신선이 하늘로 올라간 곳이라는 비선대와 금강굴, 문주담, 귀면암, 오련폭포 등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오련폭포에 이르러 계곡물이 양쪽으로 갈라져 왼쪽이 양폭포(陽瀑布), 오른쪽이 음폭포(陰瀑布)가 되며,

    계속해서 천당폭포가 나타나고 죽음의 계곡에 이르게 된다.

    이곳부터는 산허리를 타고 중청봉을 지나 대청봉에 이른다.

    이곳에서 독주폭포가 있는 독주골을 지나 오색약수로 가는 코스가 대표적인 외설악 등반로이다.


    설악의 단풍은 확실히 전번 주 오대산 단풍보다 못하다.

    전체적인 채색이 선명하지 않고 붉은색이 적었으며,

    아직 푸른빛이 많이 남아있고 곳곳이 갈색 낙엽으로 떨어져 나목을 드러내고 있다.

    예로부터 천불동 계곡은 그야말로 단풍의 바다요,

    오색의 향연이 펼쳐진 곳으로 유명한데 올 해는 많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천개의 불상이 서있는 것 같은 봉우리와 아름다운 산세는

    절로 카메라 렌즈를 들어내지 않을 수 없게 할 정도로 멋을 자랑한다.


    매표소를 지나면 소공원내의 웅장한 통일대불과 만난다.

    통일대불의 후광을 뒤로하고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 울산바위로 가는 등산로와 대청봉등산로로 갈라진다.

    우리는 대청봉 등산로로 진입하여 와선대를 지나 비선대에 이르면 금강굴과 대승령등산로와

    갈라지게 되고 귀면암까지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비선대와 양폭 중간쯤에 위치한 귀면암은 생김새가 무시무시한 귀신 얼굴 형상을 닮았다하여 근래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양폭산장에 이르는 계곡을 천불동계곡이라 하는데,

    귀면암은 원래 옛날에는 천불동계곡의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해서 겉문다지 또는 겉문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천불동계곡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다양한 형태의 기암괴석 봉우리와 맑은 물이라 할 수 있다.

    보는 사람의 각도와 보보마다 바위의 형상이 바뀌고,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일기상황 따라 형상이 달리 보이는 곳이 이 곳 천불동 봉우리다.

    돼지꼬리 모양, 사람의 옆얼굴과 남자의 성기를 닮은 듯,

    부처의 자비를 보여주는 은은한 아름다움은 세속의 모든 번뇌를 품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하늘의 파란색이 내려와 채색된 듯한 계곡의 맑은 물은 손을 담그기조차 미안할 정도로 푸르다.

    우리 일행은 귀면암에서 깍아질듯한 절벽을 따라 만든 철계단을 올르며

    오련폭포를 감상하면서 2시간 걸쳐 양폭산장에 이르러 잠시 가쁜 숨을 가라앉혔다.

    이곳에서 우리의 목적지인 희운각 산장까지는 약 2km의 급경사가 연이어져 있다.

    아직 9시 30분밖에 안되어 오색에서 대천봉을 걸쳐 하산하는 등산객과 부딪치며

    목적지를 향해 약 1km를 1시간 정도 더 오르자 양폭포가 흘러내리는 절벽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었고,

    너무나 사람들로 넘쳐나 더이상 된비알로 이어진 희운각으로의 등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공룡능선길을 따라 비선대로 하산하고 싶었으나 너무나 사람이 많아 약2시간에 걸쳐

    올라가야하는 절벽을 사람과 부딪치며 올라가야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대청봉은 이미 10회 이상 올랐기에 정상이란 별 의미도 없었고 이만하면 천불동계곡의 아름다움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기에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산행이라 쉽게 정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의 설악은 사람의 바다다.

    등산하는 내내 사람과 부딪치며 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 여간 신경 쓰이고 위험천만하다.

    세계에 자랑할만한 자연경관임에 등산로의 철로 만든 계단은 왜 그리 협소하게 만들었는지 안타깝다.

    배낭을 메고 오르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이 서로 부딪치고 질러갈 수 없어 천천히 산행의 여유로움을 즐길 수 없다.

    또한 경사가 급한 철계단 등산로에서는 차례를 기다렸다가 올라가야 하는데

    등산하는 사람과 하산하는 사람이 엉켜 혼잡하기 그지없어 자연을 즐기려는 산행이 오히려 짜증스러워서야 되겠는가?

    물론 산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짜증스러움이 상쇄되지만

    요즘은 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대폭적으로 늘어가는 추세인 만큼

    국립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보다 편안한 산행이 될 수 있도록 시설확충에 보다 많이 신경 써야 될 것 같다.

    직원들을 위한 주차공간은 있는데 손님을 맞을 공용주차장 하나 없는 곳 이곳이 국립공원이라면 누구나 웃을 일 아닌가?


    하산하는 길에 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일행과 헤어져 금강굴로 향했다.

    비선대에서 금강굴까지는 0.6km에 불과하나 그야말로 험난한 난코스다.

    금강굴은 1,300년전 원효대사가 수행한 곳으로 깍아질듯한 절벽 중간에 난 굴이다.

    이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약 40분을 경사 70도 정도의 급경사를 두 손으로 엉금엉금 기다시피 난간을 붙잡고 올라야 하는

    위험천만한 길이다.

    이 절벽의 3분의 2정도에는 대승령으로 이르는 등산로와 갈라지게 되는데,

    절벽을 오르며 바라보는 설악의 풍경은 절로 감탄사를 연발 토해낼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답다.

    올라가는 내내 같이 오지 못한 일행을 위해 웅대한 풍광을 담고 싶었지만

    안개가 덮여 선명한 산봉우리를 담을 수 없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금강굴로 오르는 길이 너무 협소하고 낭떨어지기 철계단이라 차례를 지켜 오르니,

    사람들의 희망과 소원이 그 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부처님의 자비로움으로 인간들이 바라는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면서 잠시 두 눈을 감고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대해본다.


    소공원까지 하산한 우리일행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

    급히 등산하느라 아침에 보지 못한 신흥사 경내를 돌며 관람한 후 오늘의 즐거운 산행에 종지부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