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서민의 시선

힘없는 자들의 함성

소우(小愚) 2016. 3. 4. 15:06

 어제가 3.1절이다.

 16세의 여학생이었던 유관순 열사가 대한민국만세를 외치며 일제의 압박에 저항한 날이다.

 여당은 정부와 여당의 국회에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저항하기 위한 필리버스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둘을 비교한다는 그 자체가 다소 모순일 수 있지만, 어찌됐든 이 모두는 힘없는 자의 함성임에는 틀림없다.

 세상을 향해 말하고 싶은 억눌린 감정의 하소연인 것이다.

 

 마음 같아서야 세상을 향한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즐겁게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나만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들 때는 화를 내지 않을 수 없다.

 아니, 화를 내지 않고 참고 넘기면, 공연히 주는 것도 못 받아먹는다고 병신소리 들을 것 같은 기분도 없지 않아서이다.

 우리사회는 어느 순간 울고 보채고 아우성치지 않으면, 당연히 줘야할 것까지 주지 않을 정도까지 간 것이다.

 이미 사회정의나 정은 돈이라는 명제 앞에 무너진 지 오래다.

 

 힘없는 자들은 꿈조차 꾸지 못한다.

 그저 안정된 일자리와 부모와 자식들 뒷바라지 할 정도만 되었으면 싶은데 말이다.

 열심히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해 살고 싶어도, 아무리 성적이 우수해도 일할 저리가 없으니 그 얼마나 딱한 일인가?

 대통령과 정부는 입만 열면 일자리를 말하지만, 그 일자리조차 힘 있는 사람들의 갑질에 의해 사라지니,

 힘없는 서민들은 알바 일자리나마 구하려고 거리를 헤매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는 기본가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공정한 경쟁이 되도록 법을 통해 약자를 보호할 의무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사회는, 소위 힘 있는 자들에 의해 민생경제까지 좌지우지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사회 정의나 도리를 따지기 보다는, 단지 자신에게 얼마의 이득이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약자들의 주장이나 의견을, 불법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고치지 않는 한, 힘없는 자가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혹은 사람과 만나면서,

 누군가에게는 감사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실망함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완전한 사랑이나 행복이 없듯이, 만족이란 것 역시 처음부터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들이나 가치를 지키는 것은 사람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임에는 분명하다 하겠다.

 이런 근본을 지키지 못하면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닌 짐승들이 사는 야생과 뭐가 다를까?

 

 어른이 된다는 건 슬픈 일이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 말이나 주장이 있어도, 혹여 피해라도 당할까봐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연히 나로 인해 소중한 사람들까지 아픔을 당한다면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도 하기 어렵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가족들의 삶을 지켜야하기에 작은 손해는 감내해야 한다.

 설령 이런 스트레스가 마으의 병이 될지라도 말이다.      

 

 매년 3월이 되면 봄을 샘하는 추위처럼 마음 한구석이 춥다.

 특히 올해는 제20대 국회의원선거가 있는 해라, 여러 가지 현안들이 정치 이슈화되어 시끄러울 것이다.

 분단국가라 국민들이 단합해도 시원찮을 터인데, 보수와 진보, 강자와 약자 등 각종 이해갈등으로 분열될 것이다.

 이 모든 갈등과 경쟁이 국가발전을 위한 갈등이라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올 해에는 부디 개인보다 모두를 먼저 생각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