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나의 명상록

아는 사람은 아는 것 때문에 속는다.

소우(小愚) 2012. 1. 7. 09:34

 

  세상은 흔희 속고 속으며 사는 곳이라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속고 있는 상황을 또는 속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아마 거의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속거나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해서야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속이는 사람이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일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변의,

  그것도 친한 사람에게서 이용당하기에,

  그만큼 나중에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속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누가 속이려고 해도 속는다는 그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용당할 거리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속일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따라서 속임수에 넘어갔을 때는 억울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할 때 누군가 내게서 그 무엇인가를 필요로 한다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이다.

  인간관계는 이렇게 서로 알게 모르게 보완관계에 있을 때,

  비로소 대등한 위치에 서는 것이다.

 

  알면서 속는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것이 아깝다고 생각하면 자신에게 쓸모없는 것조차 내어주지 못한다.

  그렇게 때로는 속아서 이것저것 재거나 따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우연히 도움이 될 수 있음도 나쁘지 않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속아서 더 좋을 때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러는 기분이 상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일상적인 것이고 흠이 아니라면, 때때로 모른 척 넘어가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아는 것만큼 피곤하다.

  모르면 그냥 넘어갈 일도 알면 지나치지 못하고 참견하거나 간섭하려 든다.

  내가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남이 하는 잘못은 보지 않으려 해도 이상하리만치 눈에 쏙쏙 들어오니 그것이 탈이다.

 

<침묵이 금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나이가 들수록 진득하게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참견하려 든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자신의 생각대로 이루고 싶어 하는 것을 당연하게 인정함이 옳다.

 

  상처는 항상 아는 사람이 준다.

  물론 때로는 생판 모르는 사람에 의해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아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은 것만큼 오래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자주 만나는 사람이 아니기에,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지만 아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기 싫어도, 만나기 싫어도, 생활권이 겹치기 때문에 만나고 싶지 않아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용서하지 못하더라도,

  곁으로는 남의 이목 때문에 용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는 사람일수록 늘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이나 마음을 나누는 것일지라도 항상 일방적이기보다는 쌍방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가 도움을 준 것에 대해서는 가급적이면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자신이 준 것을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대가를 바라게 된다.

 

  따라서 아는 사람으로 인해 손해를 보거나 속임을 당해도,

  이미 당한 것이라면 그 또한 따지지 말고 흔쾌히 마음에서 떨쳐버려라.

 

  어쩌면 속고 속는 것이 우리의 인생일 것이다.

  그래서 정직하고 바르게 산다거나 선한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통념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적당히 속고 속이는 것도 때로는 삶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누군가 나를 속이는 행동을 비난하기보다,

  혹여 내가 상대방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 것은 아닌지 유념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자신이 서 있는 상황을 직시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늘 마음의 문을 열고 있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