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순 수

그리움은 소유할 수 없기에 생기는 병이다.

소우(小愚) 2009. 12. 22. 10:07

   슬퍼도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행복할까?

   잠시 떨어져도 보고 싶어 안절부절 못하던 사랑이 전부였던 시절에는 정말 그랬다.

   차비가 없어 먼 길을 한밤중에 찾아갔다 불 꺼진 창을 한없이 바라만 보다 돌아온 적도 꽤 많았었다.

   그녀를 찾아가는 길은 멀고 험하여도 그녀의 생각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었다.

 

   언제나 내 곁에는 그녀가 함께 있었다.

   그래서 이별이나 의심이란 단어는 내 사전에는 없는 말인 줄 알았었다.


   사랑이 머물다 떠난 자리는 사실 사랑만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믿었던 모든 것들이 함께 떠나버렸음을 알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서서 가슴이 싸늘해지도록 바람이 불어왔다.

   지독한 병에 걸려 운신을 못할 정도로 생각이란 것조차 하기 싫어 그저 멍하니 있었다.

   죽음이 소리 없이 내려와 나를 데려갔음 차라리 행복했을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들어다보면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생각이 긍정적이고 커다란 어려움 없이 산 사람의 얼굴은 왠지 보는 사람이 편할 정도로 밝고,

   얼굴은 동안이고 곱상하지만 고생의 이력이 고스란히 배어 있음도 알게 될 것이다.

   부유하게 살아온 사람은 왠지 진취적이고 과감하며 여유가 넘치지만,

   시련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움츠려들고 결정을 망설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태생을 뛰어넘기란 그만큼 힘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측면에서 웃긴 얘기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경제적인 여유다.

   돈 얘기를 하면 무슨 속물 취급을 받지만, 100%라 하기에는 뭐해도 대부분의 이별에는 돈이 결부되어 있음도 사실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하고 싶거나 가고 싶고 곳, 또는 먹고 싶거나 입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음도 맞다.

   그러므로 진정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소망한다면 먼저 경제적인 독립을 이뤄야 한다.

   돈, 돈 한다고 돈에 걸신들린 사람 취급 받을 수도 있지만, 돈의 가치를 일찍 깨달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한 발 앞서 가기 마련이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무슨 일을 하든지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마음과 돈이라는 영원한 갈등구조를 껴안고 사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돈 때문에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으면서  왜 그렇게 돈의 가치를 잊고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돈으로 인해 부모의 눈물과 부부 싸움도 지켜봤고, 삶의 좌절도 겪어봤으면서도 30대가 다 지나갔을 때까지도,

   내게 있어 돈은 낯선 이방인에 불과했다.


   어느새 나는 그저 내 삶의 시간에 섞여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방관자에 불과하다.

   무엇인가 새로 시작할 용기도 없고, 내게 속한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기도 어렵다.

   가족이란 울안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이미 각자는 각자의 삶을 살기에도 바쁘다.

   각자가 생각하는 가치를 향해 서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기에,  난 그저 맹목적인 믿음과 사랑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때론 내 삶의 가치에 혼돈을 일으키고, 의미를 상실해 가슴이 답답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여 얼굴은 부석부석하고,

   잠 못 이루는 밤은 늘어가지만 이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래도 철없던 그 시절이 그립다.

   누군가를 향해 생명처럼 사랑하고 원했던 그 열정이 그립다.

   그 때는 돌아서 아파는 했어도 후회하지는 않았다.

   간절함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고, 바라볼 것이 있었고, 찾아갈 곳이 있었다.

   지금 삶을 함께 만들어 가는 사람과 “그리운 추억이 왜 없을까?” 만은, 그리움이란 놈은 언제나 내가 소유할 수 없기에 생기는 병과 같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다.

   행복도 사랑도 그리고 이 못쓸 생명마저도 모두 한계를 지우고 산다.

   그래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동경하고 바라보며 그리워하면서 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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