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순 수

설국, 대관령

소우(小愚) 2009. 12. 16. 15:06

   누가 말했던가?  겨울은 추워야 겨울답다고.

   뽀드득 뽀드득,  발길에 밟히는 눈 소리마저도 날씨만큼이나 차갑게 느껴진다.

   대관령 정상에 서자 차가운 바람이 윙윙 소리 내며 스쳐지나가고,

   지나치는 바람결에는 어느 산골짜기 어디쯤인가 누워있던 하얀 눈이 휙휙 허공에 금을 긋듯이 지나쳐간다.

   발그레 볼을 때리고 간 바람은 눈 빛깔보다 더 하얀 풍력발전소 날개에 부딪쳐 윙윙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대관령 휴게소 부근은 차로, 사람들로 넘쳐난다.

   대관령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있는 선자령과 능경봉,

   백두대간 능선길을 따라 하얀백지위로 수묵화를 그려놓은 듯 참나무숲과,

   나무들은 군졸처럼 솜이블을 덮듯이 정렬해 있는 대관령 주변에는, 눈이 만든 갖가지 모양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등산객과,

   대관령 양떼목장을 찾는 사람들이 오고가는 황량한 설국 대관령은 사람들의 온기를 품고 깨어난다.

           

   정상에서 보는 대관령의 겨울 풍경은 정말 근사하다.

   거칠 것 없이 앞만 보고 바람 따라 달려온 공기들이 만들어낸 설상화와,

   드넓은 초원에 펼쳐진 하얀 눈밭위로 더 하얀 풍차와 양떼들,

   그리고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얼어붙을 것 같은 파랗게 시린 하늘과

   뭉게구름,  도로를 따라 들어선 자작나무의 하얀 표피가,    

   햇살에 부서져 매달린 풍경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동을 안겨준다.

 

   대관령 정상에 서서 바라보는 용평 스키장은,

   하얀 물감을 듬뿍 찍어놓은 듯이 선명하게 보이고,     

   신갈나무가 들어찬 산등성이마다 산수화속의 절경이 되고,

   그 속에 사는 순박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모여,

   전설이 된 눈의 나라가 이 곳 대관령이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이곳 대관령 면은,

   초가지붕을 덮을 정도의 눈이 내리면 사람이 다니는 신작로까지 나가지 못해 갇혀버리기에, 먹을 양식을 미리 사둬야 했고,

   겨울이 오기 전에 김장을 만들어 마당 양지 바른 귀퉁이에 땅을 파고 묻어두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었다.

   설피를 싣고 길을 내지 않으면 이웃조차 갈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던 고장이라,

   나무로 만든 스키나 썰매를 타는 것은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듯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앉즐뱅이는 탈 줄 알아도 스케이팅은 잼뱅인 사람이 사는 곳,

   쌀밥보다 감자를 섞은 옥수수밥이 더 친근하고, 학교 난로위에는 양은 도시락이 높다랗게 쌓여 동심이 되어지던 곳,

   함지에 이고 온 아줌마에게 콩이나 옥수수를 주고야 짭조름한 간고등어와 같은 생선을 얻을 수 있었던 곳,

  겨울이면 먹을 것이 귀해 올무로 토끼를 잡고 창으로 산돼지를 사냥하던 황병산 사냥놀이의 전설이 깃든 곳,

  이 곳이 바로 하늘아래 첫 동네 설국 대관령이다.

 

   지금은 스키장이 생겨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스키를 즐기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스키를 타고 싶으면,

   한걸음씩 옆으로 조금씩 걸어 올라가서 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스키를 즐기던 장소도 산비탈 화전이 전부였고,

   또래의 친구들과 밑에서 꼭대기까지 스키를 신고 눈을 다져야 했다.

 

   스키도 참나무나 벚나무, 또는 고르쇠나무를 잘라,

   거름더미에 묻어뒀다가 커내 톱으로 켜고 대패질 곱게 해서,

   소여물 끓이는 가마에 넣고 푹 삶은 다음 틀에 넣고 코를 휘어,

   굳은 뒤 통조림깡통쪼가리로 장화가 들어갈 크기로 빈딩을 만들었다.

   그리고 눈이 스키에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왁스나 파라핀대신 양초를 녹여 문지른 다음,

   수차례 반복하여 나무에 충분히 스며들게 하여야 했다.


   그 당시는 스키를 배우는 학생이 아니면 미끄러움을 방지하는 날(엣지)이 부착된 스키는 감히 엄두를 낼 수조차 없어,

   어른들을 졸라 만든 나무스키가 유일했다.

   그리고 폴도 나무작대기가 전부였다.            

   부츠대신 고무장화를 신어야 했고,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는 여러 겹의 옷을 껴입어야 했다.            

   그랬기에 스키를 타다 넘어지고 업어지다보면 장화가득 눈이 들어차기 일쑤고,            

   눈이 녹아 얼어붙은 옷과 장갑에는 고드름이 맺히고는 했었다.             

   그러다 스키도 지겨우면 점프대를 만들어 놓고 비료포대에 짚을 넣고 미끄럼을 즐기고는 했었다.


   요즈음은 겨울이면 대관령 면은 온통 축제의 장으로 변해 버린다.             

   대관령 눈꽃축제를 비롯하여 각종 스키대회는 물론이고,             

   마을마다 눈썰매장을 만들어 겨울을 만끽하려는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하지만 대관령의 참맛은 추운 날씨와 하얀 눈이 만들어내는 대자연의 정취가 아닐까 싶다.            

   눈이 내린 날 인적이 사라진 하얀 눈밭이 주는 풍경은 사람의 마음마저 순백으로 만들어 버리는 힘이 있다.            

   눈이 덮인 집과 차와 나무와 개울, 그리고 사람들...            

   마당이나 밭이나 눈이 내린 곳이면 어디든 눈이란 자연이 선물을 즐길 수 있다.             

   초등학교 다니던 그 어린시절, 호호 손 녹이고 발이 시려 동동 발 구르면서 다니고,             

   소발구로 땔감을 나르던 그 길은 마음속에 자리한 나의 행복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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