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이나 지금이나 난 목적없이 무작정 걷기를 좋아한다.
워낙 시골에서 먼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녀서인지 걷는 것을 좋아 한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이름모를 들꽃의 연약한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라든가,
뒷동산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사춘기 시절의 사랑 이야기나,
이렇게 중년이 들어 지난 날을 회상하며 말없이 걷다가 들녘에서 만나는 황혼의 쓸쓸함이나,
땅거미 음영 짙게 드리운 거리를 헤메이다 가로등의 불빛에 부딪치는 하루살이의 서러운 몸부림 같은,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멋도 그런대로 운치가 있다.
이렇게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이면,
머리카락에 맺힌 빗방울 같은 실연의 아픔을 달래던 철없던 그리움이 생각난다.
하늘이 파랗게 아스라이 산너머로 보일때에는 그저 어디론가 정처없는 나그네가 되고 싶다.
세상의 무서움을 모르던 학창시절로 돌아가,
배냥 하나 어깨에 매고 기찻길이 끝없이 이어진 해안가를 따라 정처없이 걷고 싶다.
걷다가 힘들면 파도가 넘실거리고
갈매기 낮게 나는 해안가 바위에 앉아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우연히 옹달샘이라도 만나면 목을 축이고,
허기를 달래던 찔레순의 텁텁함과,
얼굴을 온통 찡그리게 하던 야생 시금치의 새콤한 맛에 입 안 가득 침이 고이던 길이라도,
마음 가득 추억을 담을 수 있는 호젓한 산길을 마냥 걷고 싶다.
풀대공 사이로 매뚜기와 여치가 재롱거리고,
매마른 가지에는 고추잠자리가 낮잠을 자고,
흰나비 노랑나비 함께 어우러져 사랑의 구애춤을 추는 햇 볕 가드한 숲 길과,
돌 틈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그 물 속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민물고기들의 즐거운 유영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코펠에서 쌀 한 줌 씻어서 버너에 얹어 밥하고,
길가 밭 길 오고가며 몰래 서리한 고추나 오이를 고추장에 찍어 한 입 가득 먹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게 만족했던 그시절 처럼, 아무 걱정없이 미래만 향하던 여행을 떠나고 싶다.
콩치 통조림과 감자와 양념들, 그리고 쌀과 모포, 텐트를 지고 힘겹게 오르던 산행의 고단한 여행일지라,
또다시 되돌아가 경험하고 싶다.
여행은 환상을 지우는 작업이다.
여행 가이드나 여행지의 사진,
또는 TV 매체에서 보는 발리섬이나 나이가라 폭포는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이지만,
막상 가서 보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렌즈의 세상과 사람의 눈에 비쳐진 사물은 다르다.
뭐니뭐니 해도 사람의 눈 만한 것이 없음은 가까운 마을 동산에서 보는 풍경에서도 알 수 있다.
요즈음은 평생에 한 번이나 가 볼까하던 해외여행을 마치 이웃에 마실가듯이 갔다 온다.
비즈니스나 진정 무엇을 경험하고 배울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방편으로 여행을 간다.
내가 사는 농촌의 친구들만 해도 중국은 1년에 두 서너 차레씩 다녀온다.
계모임으로 다녀오기도 하고, 허울 좋은 선진지 견학과 같이 정부의 보조로 다녀오거나,
농협이나 종묘사 혹은 비료납품업체의 찬조로 다녀 온다고 한다.
도시에사는 근로자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예전에는 신혼여행으로 다녀오던 것이,
이제는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중국이나 베트남 등 안가는 곳 없이 한국사람으로 넘쳐나고 있다.
여행은 좋은 경치와 문화유적을 직접 견학하는 것이겠지만,
진정한 여행은 그 나라의 문화와 풍습을 경험해 보는 것이라 한다.
여행을 하면서 얻어지는 가장 큰 소득은 객관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편견과 아집이 엷어지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견해를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
사람사이의 갈등이 줄어들게 되고, 공동의 상황에서 이해하고 협조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알게 한다.
어쩌면 여행을 우리들의 삶에 비유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사춘기 시절 한 여자의 사랑에 목 매던 사랑의 열정이 점차 결혼 적령기에 이르면,
주변환경과 가족관계나 미래를 생각하고 갈등함에 따라 사랑보다는 현실을 찾는 것처럼,
여행은 세상을 욕심의 눈이 아니라 이성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여행은 이해관계가 없는 많은 사람과 만나,
부담없이 대화하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을 수 있다.
다시 만나기 어려운 대상이라는 전제가 붙어서인지는 몰라도,
가식없이 스스로의 본 모습을 드러내 놓고 대화를 나눌 수 있기에,
의외로 사람의 본성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고난을 함께한 친구가 쉽게 잊혀지지 않고 마음속에 남아있듯이,
여행이란 스스로의 삶이란 등짐을 지고 걷는 인생의 길이기도 하다.
청년일 때의 여행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전이라고 한다면,
중년의 여행은 지금껏 걸어온 길을 점검하여 다가 올 미래를 좀 더 굳건하게 다지기 위해,
마음을 다가듬는 결의의 시간이고, 노년의 여행은 자신의 걸어 온 삶을 반추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때로는 혼자만의 여행을 할 필요가 있다.
이성과의 여행은 설레움을 주나 무엇인가 불편하게 하고,
가족간의 여행은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기에 고생이 뻔히 보이는 여행이라,
즐거워야 할 여행이 곧잘 최악의 상황으로 얼국 붉히고 돌아서는 여행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하는 여행은 남의 눈을 의식않고 주변을 돌아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유롭다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고,
가고 싶은면 가고, 머물고 싶으면 장소에 구애없이 언제든지 홀가분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있어 최고의 행복은 자유다.
돈에서의 자유, 행동에서의 자유, 목적에서의 자유...
일상의 삶으로 규정되어진 모든 굴레로 부터 벗어나 온전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게 한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들어갈수록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고 어린시절의 친구가 그리워진다.
무슨 말을 해도 혼쾌히 들어줄 것만 같은 마음의 친구와 같은 사람...
올 해는 이런 사람을 만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
언제나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어린시절 추억을 같이했던 친구의 마음을 찾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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