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 억/산행 및 여행

2024년, 여주여행과 원주 반계리은행나무(1)

소우(小愚) 2024. 10. 28. 21:31

 

◆ 일시 : 2024.10.26

 


◈ 원주 반계리은행나무와 여주여행

 

1. 원주 반계리은행나무(08:55~09:20)

2. 여주 강천섬유원지(09:40~10:50)

3. 여주 신륵사(11:35~12:35)

4.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13:00~15:20)

5. 여주 파사성과 일몰(15:50~18:00)

6. 양평 상자포리마애석불입상(16:52~17:12)

 

 

아내는 며칠 전부터,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의 노랗게 물든 단풍을 보고 싶어했다,

급기야 이번 주 토요일 보러가자고 한다.

급히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반계리은행나무 단풍구경은 얼마 걸리지 않아

친구가 권유했던 신륵사와 세종대왕릉이 있는 여주여행을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

 

여행은 아침 7시에 출발하여,

먼저 원주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를 구경한 뒤,

여주로 이동하여 남한강이 흐르는 강천섬유원지를 돌아보고,

신륵사-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여주 파사성을 차례로 둘러보기로 했다.

아침식사는 김밥을 사기로 하고, 점심은 여주맛집에서 여주음식을 맛보기로 했다.

 

문막IC에서 진출하여,

반계리은행나무주차장에 도착하니 9시 조금 전이다.

실망스럽게도 주차장에서 보이는 은행나무는 아직 푸른 잎이다.

이른 시간임에도 주차장은 벌써 만차에 가깝고 여행객들로 넘쳐난다.

은행나무는 1964131일 천연기념물 제167호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유명하다.

 

반계리은행나무는,

높이 34.5m, 가슴높이의 줄기 둘레가 16.9m,

남북으로 31m 정도로 넓게 펴져 있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대략 800년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이 나무는 예전에 이 마을 성주 이씨 가문의 한 사람이 심었다고도 하고,

또 아주 오랜 옛날에 어떤 대사가 이곳을 지나가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신 후,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꽂아 놓고 간 것이,

지금 이곳 은행나무라고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 속에 커다란 흰 뱀이 살고 있어서,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는 신성한 나무로 여겼다.

가을에 단풍이 일시에 들면 다음 해에 풍년이 든다는 전설도 있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으로 살아온 오래되고 큰 나무로서 생물학적 가치가 높다.

게다가 전설적 신목으로서 민속문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무성하고 줄기와 가지가 균형 있게 자란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멋진 나무로 꼽힌다고 한다.

 

오는 본 은행나무는,

아직 거의 대부분 푸른색으로 가득차지만,

은행나무 주변을 한바퀴 돌면서 구경하는 내내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비록 한그루인지 아니면 여러그루가 모여서 자란 것인지 궁금증도 생기지만,

800년의 세월 동안 이토록 아름답게 자랐는지 경이롭기만 하다.

 

이곳 원주에 사신다는 한 분 말씀이,

아마 다음 주말이면 절정으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을 볼 수 있기에,

꼭두새벽에 오지 않는 한, 주차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한다.

나 역시 노랗게 물든 이곳 은행나무를 보고 싶지만,

올해는 나와 인연이 아닌가 싶다.

 

 

 

다음 여행지는,

여주 강천섬유원지이다.

그곳까지는 이곳 주차장에서 대략 20정도 걸린다.

그만큼 원주와 여주는 이웃해 있는 도시다.

 

알다시피 여주는 쌀의 도시다.

도농복합도시지만 쌀을 임금님께 진상할 정도로 농업의 비중이 높다.

지금은 아울렛과 SK하이넷스가 들어와 도시화 되어가지만,

이번 여행 결과 남한강을 따라 형성된 역사와 문화 전형적인 농촌마을풍경이다.

 

강촌섬유원지주차장에 들어서자,

이곳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지 주차요원들이 나와 주차를 도와준다.

하지만 주차하고 나오자 사방이 너른 벌판이라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다.

주차요원에게 문의하니 강천섬유원지는 여기서 약 800m정도 걸어가야 한다고 한다.

 

유원지는 면적 571,000,

춘천 남이섬보다 큰 규모로, 둘러보는데 도보로 약 1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강천섬유원지는 2개의 다리를 통해 진입할 수 있는데,

대형 주차장은 약 1km 떨어져 있어 노약자를 동반한 방문객들은,

인근 굴암리 마을 창고 주차장을 이용하면 좋다.

 

남한강(여강) 상류에 위치한 강천섬은,

은행나무와 목련과 2급 멸종 위기식물 단양쑥부쟁가 군락이 있는 생태섬이다.

강천섬은 본래 섬이 아니라 장마철이면 물이 불어 섬이 되던 곳으로,

4대강 사업을 거치며 육지와 완전히 분리되어 섬이 되었다.

 

주차장을 나와,

좌측으로 단양쑥부쟁이와 억새꽃이 하늘거리는,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걷다 강천교를 지나자 강천유원지가 나온다.

몇곳의 갈림길을 있었지만 좌측으로 쭉 가면 강천섬의 핫플레이스 은행나무 길이다.

하지만 이곳 은행나무 길 역시 반계리은행나무와 같이 노란단풍은 아직이다.

 

그러나 은행나무길 양쪽으로,

넓게 펼쳐진 잔디밭 벌판풍경은 마음마저 상쾌하게 만든다.

우측으로는 은행나무길, 좌측으로는 사시나무속 미루나무(포플러)나무 길이다.

그 끝에는 여주힐링센터와 견생조각전의 조각품과 어린이 놀이터가 조성되어 있다.

 

다양한 포토존을 지나,

힐링센터의 국화분재전시회에 들렸지만, 국화 역시 아직이다.

분명 가을계절의 향취를 느끼고 있지만 아직은 계절의 초입에 선 느낌이다.

반팔을 입을 정도의 날씨라 유원지 잔디밭에는 텐트가 펼쳐져 있고,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 자리하고 있다

 

힐링센터에서 좌측으로 여강 강줄기가 이어진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변으로 은빛억새의 하늘거리는 몸짓이 투영된다.

그리고 그 길 너무 산줄기에 들어선 건물들이 여강에 한폭의 그림을 그린다.

힐링센터 잔디밭 가운데로 이어진 은행나무은 꽤 짙은 노란색단풍이 들었다.

조금은 아쉬움을 달래주는 듯하다.

 

오늘 이곳에서는,

박창근콘서트가 열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잔디밭에는 무대가 설치되고 푸드트럭이 가득하다.

어렷을 때 불렀던 동요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있네.>도 불러보고,

푸른 가을하늘과 가을기운을 가득 느껴본 시간이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벌써 1050, 서둘러 신륵사로 출발했다.

여주신륵사주차장까지는 도로방지턱으로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러나 주행시간이 많아 여주풍경을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다.

도로 곳곳에 자리한 은행나무가로수도 볼만 했다.

 

 

 

신륵사로에는 두 곳의 주차장이 있다.

한곳은 도자기를 판매하는 관광주차장이요, 한곳은 신륵사주차장이다.

관광주차장에서 가져간 김밥과 삶은 달걀과 고구마로 점심을 먹고 신륵사로 향했다.

신륵사주차장 입구에는 제법 은행나무단풍이 노랗게 물들었다.

은행나무길을 지나자 일주문이다.

 

신륵사는,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변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산 속에 위치한 대부분의 절들과는 달리 평지에, 그것도 강변에 있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절 이름인 '신륵에서 륵()은 굴레를 뜻한다.

고려 우왕 때 인근의 마암에서 용마가 나타나 행패를 부리자,

미륵불 또는 보제존자 나옹이 신기한 굴레를 가지고,

그 말을 다스렸다는 설화에서 신륵사란 절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아마도 불력으로 남한강의 범람을 막아보고자 했던 바람에서 유래한 설화로 추측된다.

 

1376, 고려말의 고승 나옹은,

회암사의 주지로 중창불사를 했다가 탄핵을 받아 유배를 떠났는데,

유배길에 신륵사에 들렀다가 그대로 입적하였다.

나옹의 제자들은 스승을 화장한 뒤 나온 사리를,

회암사와 신륵사에 나누어 부도탑(보제존자석종)을 조성했다.

 

조선불교계는 ,

나옹의 스승인 범승(인도 승려) 지공, 나옹,

그리고 두 승려의 공동제자인 무학을 3화상(三和尙)이라고 부르며,

불교의 조사로 추앙하였고 민간신앙의 대상으로도 여겼다.

그리하여 나옹이 입적한 신륵사에도 조사당을 세워 3화상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1469(예종 1),

세종의 영릉이 여주로 이장됐는데,

이때 신륵사를 원찰로 하자는 건의로 1472년부터 대규모 중수했다.

 

문화재로는 ,

조사당(보물 제180), 다층석탑(보물 제225,226),

보제존자석종(보물 제228), 보제존자석종비(보물 제 228), 대장각기비(보물 제 230)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보물 제 231),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보물 제 1791)

그밖에 경기도 유형문화재인 극락보전, 팔각원당형 석조부도, 삼층석탑 등이 있다.

 

신륵사 다층전탑은,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전탑이며 동시에,

경기도에 있는 유일한 전탑이다.

모전석탑까지 범위를 넓혀도 경기도에서는 이 탑이 유일하다.

 

이 전탑은 화강암으로 7단의 기단부를 만들고,

그 위에 벽돌로 6층의 탑신을 만든 후 옥개석(지붕돌)을 올려둔 형태인데 ,

6층전탑이 아니라 다층전탑인 이유는 현재의 모습이 원형이 아니고,

변형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주문을 지나자 ,

불이분이 나오고 연이어 신륵사다.

우측으로는 여강을 감상할 수 있는 누각이 있고,

좌측으로는 탬플스테이를 위해 건축한 건물이 지어져 있다.

그 앞으로 소나무와 은행나무가 사찰로 양쪽으로 심어져 자라고 있다.

 

신륵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만난 건물은 범종루이다.

그리고 구룡누각과 나옹스님이 심은 약 600년 된 은행나무이다.

갈라진 세가지는 불, , , 삼보를 상징한다고 한다.

높이 22m, 둘레 3.1m이다,

 

은행나무를 지나면,

경기도 유형문화재인 극락보전이 보인다.

정면 3, 측면 2칸의 팔각지붕건물로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극락보전 앞에 자리한 다층석탑(보물 제 225)은 조선 성종(1472) 때 세워진 탑으로,

2층 기단 위에 여러 층의 몸돌을 올린 것으로, 현재 8(높이 3m)까지 남아있다.

 

극락보전을 지나면,

정면으로 200년 돤 향나무와 조사당이 보이고,

좌측으로 명부전과 봉송각, 극락보전 뒤로 산신각이 자리한다.

 

조사당은,

불교의 조사로 추앙하는 3화상을 모신 곳이다.

중앙에는 나옹을, 좌우에는 나옹의 스승인 범승(인도승려) 지공과,

두 사람의 제자인 무학대사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다.

우물 정()자 건물로 아담하다.

 

조사당 뒤 언덕에는,

신륵사를 중창하고 입적한 나옹의 사리탑이 있다.

보물 제 228호인 이곳 보제존자석종은,

단층기단 위에 2단의 받침을 둔 후 종 모양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이 석종을 중심으로 전면에는 석등, 후면에는 탑비가 서 있다.

 

마지막으로,

산신각을 보고 내려와

은행나무 옆 보물 제 226호인 다층전탑으로 향했다.

전탑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으로 ,

2단의 기단에서 다시 3단의 계단을 쌓은 뒤, 여러 층의 탑신을 올렸다.

 

그 옆으로,

보물 제 230호인 대장각기비가 있다.

고려 우왕(1383) 때 세워진 귀부와 이수 없이 간략화된 것이다.

그 아래에는 우측 강변으로 강월헌과 3층석탑도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잠시 누각에 앉아 여강의 풍경을 보면서 망중한에 빠졌다.

 

 

 

 

세종대왕릉은 신륵사에서 지근거리다.

영릉(英陵)은 세종대왕(조선 4)과 그의 비 소헌왕후의 합장묘이다.

이곳은 역사적 가치와 함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관광명소이다.

특히 이곳에는 효종(조선 17)과 그의 비 인선왕후의 무덤인 영릉도 함께 있어,

두 왕릉을 동시에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릉 주변에는 다양한 산책로가 조성되어,

방문객들이 계절마다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봄에는 진달래 숲길이,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왕의 숲길이 인기가 높다.

입구의 역사문학관은 세종대왕과 효종의 업적을 소개하고 알리는 역사학습의 장이다.

특히 세종대왕 동상 주변으로 당시의 발명품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관람은 매표를 한 뒤,

세종대왕 동상과 발명품을 보고, 재실과 구재실을 지나면 영릉이다.

홍살문을 지나 좌측의 수라간과 우측의 수복방을 구경하면 정자각이 나온다.

정자각 뒤로 보이는 영릉은 조선 최초의 합장묘이다

좌측 산책로를 따라가면 영릉에 오를 수 있다.

 

본디 영릉은 서초동에 있었으나,

풍수지리상 불길하다하여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현재의 석물들은 예종 때 이장하면서 새로 제작한 것으로,

영릉 봉분에는 방풍석을 생략하고, 십이지 문자를 새긴 난간석만 둘렸으며,

혼유석은 2좌만 배치하였는데 조선전기합장묘의 특징이라 한다.

 

 

효종대왕 영릉(寧陵),

이곳 영릉(英陵)에서 비각 옆을 지나,

왕의 숲길을 따라 약 700m, 15분 정도 걸으면 나온다.

인조 때 봉림대군이었던 효종은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서 8년간 볼모로 있었다.

형인 소현세자의 급사로 왕위에 올라 북벌을 꿈꿨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효종대왕 영릉(寧陵),

본래 구리 동구릉 내 원릉자리에 조성하였으나,

자주 문제가 생겨 현종 14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이듬해에 그의 비인 인선황후가 돌아가시자 효종릉 아래에 모셨다.

이로 인해 영릉은 최초로 한 언덕에 왕과 왕비의 능이 자리한 동원상하릉이다.

 

효종대왕릉에서 주차장으로 돌아가려면,

재실을 지나 매표안내소에서 우측으로 약 20여분 걸으면 나온다는데,

우리부부는 다시 재실로 올라가 우측 숲속 산책로를 따라갔다.

20여분 걷자 세종대왕 동상 옆으로 이어졌다.

주차장으로 돌아와 휴식과 간식을 먹고 마지막 여행지인 파사성으로 향했다.

 

 

 

 

여주 파사성까지는,

이곳에서 30여분 정도 소요되는 꽤 먼 거리다.

 

1977년 사적으로 지정된 파사성은,

여주시 대신면과 양평군 개군면 경계에 있는,

해발 230m6세기 중엽 이후 축성된 테뫼식산성이다.

둘레는 936m이고, 내부 면적은 약 3,966이다.

산정상부와 계곡을 일부 포함하여 부정형에 가까운 형태로 축성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파사니사금(80112) 때 축성되어 파사성이라고 하며,

고대 파사국의 옛터가 있어 파사성으로 불리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문헌적으로 뚜렷한 근거는 없다.

 

파사성은,

6세기 중엽 한강유역으로 진출한 신라에 의해 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내 시설물은 문지 2개소, 포루 3개소, 우물지와 수구지,

그리고 곡성지 각 1개소, 추정 건물지 8개소 정도다.

정상부에서 양평과 여주가 한눈에 들어온다.

 

파사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매우 험란하다.

주차장에서 파사성 정상까지는 약 860m에 불과하다.

시멘트로 포장되어있지만 공사중이고 급경사라 오르기 힘들다.

하지만 파사성 성곽을 보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힘든 순간을 금방 잊게 된다.

성에 올라 또다시 감탄하게 된다.

 

 

파사성 아래에는 남한강이 흐르고,

산줄기 아래로 이포보가 여강에 한 폭의 그림을 그린다.

돌아보면 좌측으로는 여주가 우측으로는 양평이 눈안에 가득 들어온다.

성곽에 올라 바라보는 산세를 따라 축성된 파사성의 모습은,

그저 경탄스러울 뿐이다.

 

언뜻 보면,

테크계단이 있는 곳이 정상이고 전부인 것 같지만,

그 모습은 성의 일부일 뿐, 본격적인 성의 모습은 그 너머라 할 수 있다.

테크계단을 올라 바라본 풍경은 한마디로 경이롭다는 표현이다.

성곽뿐만 아니라 성곽아래로 펼쳐진 풍경도 말문이 막힐 만큼 아름다움 그 자체다.

 

성곽 위로 자란 소나무도 멋스럽다.

마치 두 쌍의 부부가 나란히 서 있는 듯하다.

그리고 성곽 위에 걸터앉아 발 아래로 펼쳐진 여주와 양평,

그리고 강과 산의 풍경은 왜 이곳이 일몰의 명소인지 새삼 깨닿게 한다.

정상에 서니 세상 모두가 발아래 있는 듯 상쾌하다.

 

시간을 보니 450,

일몰은 대략 30~40분 후면 시작될 듯하다.

일몰을 보지 않고 그냥 하산하기에는 너무 아쉽다.

그래서 정상애서 비스듬이 난 숲길을 따라 약 187m 떨어진,

양평군 상자포리 마애석불입상과 마애불 감로수를 맛보기로 했다.

 

잠시 숲길을 따라가다보면,

돌탑이 보이고 그 아래로 허름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건물아래로 양평이 한가득 들어온다.

건물 뒤 암벽에 새겨진 마애석불은 희미하다.

그리고 암벽 틈에서 흘러나오는 감로수는 갈증을 말끔히 가시게 할 정도로 시원하다.

 

양평상자포리마애석불입상은,

파사성 동문자리 인근의 자연 암벽 한가운데 그려진 대형 마애여래입상이다.

단단해서 깊게 조각하기 어려웠던지 얕은 선각으로 윤곽선만 간신히 새겨져 있다.

양감이 전혀 없지만 마멸된 부분이 적어서 형체는 잘 남아있다.

자칫 일몰시간을 놓칠까 서둘러 돌아왔다.

 

정상 부근 성곽에 앉아,

일몰을 기다리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현재시각 오후 528, 예정 일몰시각보다 조금 빠르다.

여강이 흐르는 파사성 건너편 산줄기로 일몰은 붉은 노을과 함께 시작되었다.

산과 강과 어우려진 일몰광경은 왜 이곳이 일몰의 명소인지 여실히 보여준 듯하다.

 

일출과 달리 일몰시간은 짧고 간결하다.

해가 진 듯하면 벌써 어둠이 밀려오기에 서둘러 하산해야 한다.

파사성 정상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한바퀴 돌아 파사성 입구가 나온다.

경사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자 파사성보도현수교와,

이포보가 조명에 휩싸여 있다.

 

이젠 여수여행을 마칠 시간이다.

하지만 여주까지 와서 여주쌀로 지은 밥과 음식을 맛보지 않고,

돌아가기는 아쉬워 여주맛집을 검색, 두부고을해마루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30여분 정도 달려 온 식당에서 해마루정식을 주문했다.

두부 맛집이라 그런지 콩물과 함께 나온 두부요리가 특이하고 맛도 좋다.

 

이번 여주여행은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비록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가을계절을 만끽하였다.

오는 내내 안개로 고생했지만 여행하는 동안 푸른 가을하늘도 원없이 볼 수 있었다.

특히 드넓은 강천섬유원지의 풍경이나 파사성에 머문 시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