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삶의 낙서들

가을 그 언저리에.

소우(小愚) 2020. 10. 15. 08:36

 

 

 

◆◇ 가을쯤 서 있는 당신에게.

 

오늘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예전 회사 일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마을 어르신이 일하시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뵈었다.

한창 때만해도 마을 대소사를 보면서 존경받던 지역 명사였는데,

어느새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일행 중 한 분은,

이젠 쉬실 나이에 힘든 밭일을 하신다고 걱정했고,

다른 한 분은, 저렇게라도 소일해야,

오히려 건강에 더 도움이 된다고 응원했다.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이 모두가 당사자가 아닌 남의 사정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그 사람이 무슨 이유와 사정으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힘든 모습을 한 채,

일하는 지 우린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 당신의 미래가,

그 분의 모습이란 걸 우린 본능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늙어서까지 일하는 그 모습이 바로 자신이란 걸 안다.

 

왜 평생 건강하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

왜 평생 남에게 아쉬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살고 싶지 않을까?

멀쩡하게 길을 가다 넘어져 다치고, 잘못 하나 없이 교통사고를 겪기도 하고,

나의 말과, 행동과, 생각과 관계없는 다른 사람의 잘못에,

한순간에 일상의 모든 것을 무너져 버리기도 한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자아의지가 무너져갈수록 그 순간,

우린 추운 가을날 낙엽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다.

나를 지킨다는 건 바로 의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건강이다

 

이 모두가,

늙어가는 남자의 초라한 모습이다.

변함없이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 어찌 세월을 이기겠는가?

아내에게, 자식에게, 굳건한 믿음이요 버팀목이었던 당신이,

점차 경제력을 잃어가면서 친구와 가족들에게조차,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는 사람이 되었다.

 

남자라는 자존심을 뒤로하고,

참으로 견디게 어려운 시간을 맞이해야 한다.

 

늙으면 모두가 힘들다.

새롭게 다가오는 변화도 힘들고,

매일 해야 하는 일도 그렇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자신도 모르게 이런 변화를 만드는 것 같다.

 

그동안,

지켜왔던 가치관들이 하나 둘 무너져 내릴 때면,

왠지 내 삶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늙음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자리에 머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늙으면,

운명론자로 변하는 것 같다.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닌 운명 때문이라는,

핑계와 자기합리화가 필요해서인지도 모른다.

현실에서의 부족함이 자신 때문이라고 인정하면,

왠지 지금까지 산 내 인생이 너무 초라하고 허무하니까 말이다.

 

비록,

아프고 병든 늙은 몸일지라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할 현실에서,

어쩌면 마지막 자존심마저 상처 입지 않으려는,

가을쯤 서 있는 남자의 가슴 저린 쓸쓸함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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