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꼰대, 이 역시 나의 삶이다 .
사람은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나면,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은 생각과 함께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된다.
그동안 자기중심적이었던 생활패턴에서 벗어나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마음도 깊어진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나 평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자신의 손익에 따라 그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에 매어 있었는지 말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은어 중에 “꼰대”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주로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말로 쓰였다.
그러나 요즘은 구태의연한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모든 행위를 표현하는 말로 쓰인다.
나이를 따져 서열을 나눈다든가, 우월한 자신의 지위로 복종을 강요하는,
일련의 행위가 바로 꼰대인 것이다.
마음 같아서야,
늘 열린 마음으로 살고 싶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성인이 되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가치관이 것이 생긴다.
그런데 이 가치관이란 놈이 바로 사물이나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인데,
문제는 반드시 정답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기준도 달라져야 하는데,
이 가치관이란 놈은 자꾸 그것을 부정하려 든다.
남의 눈에는,
이상스럽게 보여도,
내게는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로 변질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최고인양 온갖 유세(有勢)를 다 떨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초라한 자신의 삶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작은 이익에 삶의 가치가 송두리째 무너지고,
절망의 늪에 허우적거리는 초라한 모습도 볼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온 지난날들이 오히려 덫이 되고 짐이 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어느 누구보다 자신만만했던 모습조차 몹시 부끄럽게 느껴지게 될 것이다.
비로소 나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이다.
아! 나는 이 정도에 불과했구나.
이런 한탄은 자신의 한계에 대한 자성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자조적인 말은 결국 그동안 삶의 방식에 대한 후회라 할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이나 말도 해야 하고, 가고 싶지 않은 모임에도 참석해야 하는 등,
삶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스스로를 내려놓아야 할 경우도 많다.
우린 남에게는 자주 쓴 소리를 한다.
특히 자신보다 경제적 사회적 약자에게는 냉혹할 정도다.
평소 친분이 돈독한 것도 어떠한 작은 도움조차 준 것도 아니면서,
단지 나보다 못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 내놔라 배 내놔라 참견하고 큰소리 치곤 한다.
상대방의 처지나 기분은 아예 고려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면 심할 정도로 꼰대 짓을 한다.
사람은 병들고 늙으면,
원하지 않아도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이,
평소 친구나 가족과 같이 삶을 같이하는 사람일수록 잘해야 한다.
한쪽이 강하먄 다른 한쪽은 눈치껏 휘어질 줄 알아야 서로의 연이 끊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져서 이기고, 때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함이 서로를 위하는 길이다.
진심이 전해지도록 정성을 다해 봉사해야 한다.
삶은 내가 찾아가는 걸까?
아니면 삶이 내게 다가오는 걸까?
내 삶이 있는 세상을 사느냐 아니면 내 삶이 없는 세상을 사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높고 오래된 산봉우리는 모나지 않고,
고목일수록 옹이가 많듯 꼰대 역시 삶의 흔적일 뿐이다.
비록,
주변 사람들로부터 꼰대로 불릴지라도,
소중한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난 언제나 꼰대가 될 것이다.
치열하게 살았기에,
난 부끄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