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오후 1시가 가까웠다.
신정 날 당직을 선 뒤라 피곤했던지 오전 내내 잠을 잔 것이다.
연휴인데 너무 혼자 쉰 것 같아 가족들과 점심메뉴로,
그동안 비싸서 외면했지만 가족들이 먹고 싶어 하던 조개구이로 정했다.
언젠가 조개구이를 먹고 싶다는 아내와 아이들의 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신정연휴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특별하고 좋은 추억을 선물하기로 했다.
서둘러 채비를 하고 동해안을 따라,
주문진 근처에 있는 영진항의 조개구이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연휴라서 그런지 영진바닷가 도로와 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넘쳐났다.
간신히 상가와 떨어진 도로변에 주차하고 조개구이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량이나 종류도 얼마 되지도 않은 조개가,
한 접시에 6만원이라는 가게주인의 설명을 들은 아내와 아이들은 너무 비싸다고,
주문진에서 홍게나 사서 돌아가자고 한다.
아빠의 주머니사정을 헤아려 주는 것은 고맙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아,
“조개구이는 숯불에서 익어가는 모습에 먹고, 짭조름한 그 맛에 먹고, 적은 듯한 그 기분에 먹는 거다.”
라고 재차 권했지만 도리어 배가 부르지도 않는 조개구이를 굳이 먹느냐고 야단들이다.
가족들의 주장에 포기하고 주문진시장으로 향했지만,
차가 너무 밀려 1시간여를 진입도로에서 헤맨 끝에 돌아서야 했다.
사실 아이들은 피자를 먹고 싶어했다.
그럼에도 아빠의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해 따라나선 것이다.
결국 조개구이보다 더 먹고 싶은 탕수육과 피자로 허기를 채우고 가족드라이브를 즐긴 하루다.
몇 년 전만해도,
영진바닷가는 그리 분비지 않았다.
철조망이 처진 바닷가 도로를 따라 허름한 건물의 횟집과 몇 개의 조립식 조개구이 집이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은 주문진항과 시장을 찾는 관광객들로 이곳은,
주차하기 어려울 정도로 온갖 상가가 들어서 복잡하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생선회나 각종 조개류의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라,
이젠 이곳사람조차 쉽게 먹을 수 없는 메뉴로 변해버린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고향에서 동문체육대회가 열리면,
이곳 할매조개집에서 조개를 사고 주문진에 들러 생선을 사서 구워먹었는데,
그 때 5만원이면 양껏 먹을 수 있었던 조개가,
지금은 20만원어치를 사도 그 량과 종류가 얼마 되지 않는다.
내가 처음 강릉에 왔을 때만 해도,
해안가 바위마다 더덕더덕 붙어 널리고 널린 게 홍합조개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여름이면 친구들과 바닷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모닥불에 조개 구이를 했는데,
이젠 귀하디귀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난 조개구이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많다.
워낙 찰촌에 살아서인지 해산물보다 육류를 좋아한다.
그래서 생선회도 새꼬시보다는 뼈 없이 부드러운 것이 좋고, 생선매운탕보다는 육개장을 더 좋아한다.
그동안 접대나 모임에서 생선회와 나온 자리치고 숙취로 고생하지 않은 날이 드물 정도다.
쉽게 술이 취해 본의 아닌 실수도 한 경험이 있어 이런 자리는 가급적 피한다.
그러나 조개구이에 대한,
나쁜 기억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 내가 처음 조개구이를 해 먹은 조개는 사근진 바닷가 섭(홍합)으로 기억한다.
결혼 후 강릉으로 이사 온 뒤 배를 가지고 있던 여자동창의 초대로,
사근진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고향에서 내려온 친구들과 어울러 홍합조개구이를 해 먹었는데,
그 때의 그 맛이 기억 속에서 늘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고향친구들과,
남향진과 안목바닷가 해변에서,
번개탄으로 구워먹던 조개구이에 대한 기억도 선명하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추억이란 걸 가지고 산다.
그런 추억이란 일기장속에 기분 좋은 기억이 많이 담길수록 분명 행복할 것이다.
그래서 부모의 입장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지만,
이렇듯 아이들은 나와 생각차이때문에 생기는 괴리감도 있다.
그들 역시 모처럼 맞이한 신정연휴라,
자기 나름대로 편한 시간적 여유를 즐기고 싶어 그럴 것이다.
어쨌든 가족이란 소중함이 마음 가득 더해진 하루다.
< 사진 : 신년의 영진바닷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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