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나의 명상록

적당한 처신은 모두를 편안하게 한다.

소우(小愚) 2013. 2. 7. 11:32

 

 우리가 살면서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아라, 정의롭게 살아라.>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스스로의 삶이 바르지 않으면 진정으로 행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악한 끝은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또 아무리 악한 처신일지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 사람의 일생을 통틀어서도 징벌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악한 일이든 좋은 일이든 처신의 결과는, 남들은 알수 없어도 양심의 이력에는 남겨질 수밖에 없다.

 

 조금은 괴변일지 모르지만,

 다가오지 않은 것들에 대해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너무 뒷일을 걱정하기 보다는, 현재 지금 처신하는 자신의 행동이 옳은가 아닌가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

 스스로 판단해서 옳다고 생각하면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서보면 대부분 해서 후회하는 일보다, 하지 않아 후회할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신은 작금에 처해 있는 상황에 맞추는 것이어야 한다.

 

 적당한 처신은 모두를 편안하게 한다.

 적당한 처신의 기준은, 그 일에 결부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의미할 것이다.

 자신의 입장에 치우쳐 도에 지나치는, 누가 봐도 무리라고 여기는 처신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이익이나 특정집단의 이익의 일방적으로 강요는 모두가 불편하다

 그러므로 주장이나 의견의 관철은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것이어야 한다.

 

 사람은 희망이 있는 한 아무리 어려워도 웃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행산 나의 처신을 통해 상대방도 이익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좋다.

 전부를 얻기보다는 일부를 얻음으로써 전부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때로는 한 사람의 적이 백 사람의 후원보다 그 파괴력이 더 클 때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젊었을 때는 내 것을 그리 고집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조급함이 쌓여 남을 자주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저 홀로 아무리 행복해도,

 그 행복을, 그 즐거움을 바라봐 줄 사람이 없다면 그 행복조차 반감될 것이다.

 조금은 마음에 안 들고, 해 주기 까다로운 일일지라도 내 힘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도와줄 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 가능한 일조차 나누지 못하면서, 어려울 때 도움을 바랄 수는 없지 않는가?

 

 그리고 한번 도와줬으면,

 그 일로 공치사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오히려 도와주고도 욕먹는 행동일 것이다.

 

 그만큼 처신에 있어 힘든 것이 바로 중용이다.

 얼마큼 하는 것이, 얼마큼 하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처신에서의 중용은 양심이란 잣대로 스스로를 저울질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에게 ,또 때로는 남에게, 이익이나 손해가 치우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양심이란 거울에 비춰볼 때 ,스스로 떳떳하다고 느낄 경우 최소한 자신에게는 부끄럽지는 않을 것이다.

 

 무리수는 보편적인 이치에 적합하지 않는 생각이나 행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처신은 세상을 살면서 삶이나 사람을 대하는 그 사람만의 생각이나 몸가짐이다.

 몸에 맞는 옷이 편한 것처럼 아무리 좋은 의도의 처신일지라도,

 다른 사람이 불편을 느끼면 올바른 처신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급적이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최적의 처신이 가능하도록, 합리적인 마음가짐을 습관화하는 것이 좋다.

 이처럼 적당한 처신은 모두를 편안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