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나의 명상록

자식은 기대감보다는 존재감으로 바라봐야 한다.

소우(小愚) 2012. 1. 17. 13:11

 

 부모에게 있어 자식은 ,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중 가장 존귀한 것이다.

 또한 아무리 모자라고 못생긴 자식이라도 가장 아름답다.

 즉, 부모에게 있어 자식은 그 존재감만으로도 가장 소중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아기가 지나 아이가 자라감에 따라,

 그 자식을 존재감으로 바라보지 않고 기대감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 자식을 통해 자신의 못 이룬 꿈을 이루고 싶어 하고,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식이 원하는 것들보다 부모가 원하는 것들을 강요하게 된다.

 

 흔히 사람을 곧잘 그릇에 비교한다.

 즉, 그릇에도 간장종지와 같은 작은 그릇이 있는 반면, 국이나 물을 담는 큰 그릇도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이 그릇의 요도가 다르고, 담는 량 역시 다르다.

 또 같은 량이라도 금은보배와 같은 가치 있는 것들을 담을 수도 있고,,

 반대로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담겨지기도 할 것이다.

 

 어떤 것들은,

 스스로 원해서 담겨지기도 할 것이며,

 또 어떤 것들은 스스로 원치 않아도 강제로 담기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릇 모두는 무엇인가가 담겨졌을 때 그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 역시도 그렇다.

 사람이란 그릇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 도 중요하지만,

 담겨진 것들을 <어떻게 쓰느냐> 역시 중요할 것이다.

 부모는 결국 자식이 나중에 사회에서 <어떻게 쓰여 질 것인가>를 모르기에,

 보다 다양하고 많은 것을 채워주려 전력하는 것이다.

 이처럼 부모가 아무리 많은 것들을 채워줘도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결국 자식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모는 무엇을 채우기에 앞서 먼저 그릇을 넓히는 작업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튼튼한 그릇일수록 무엇을 담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역할이 그릇이라면 책임은 그 그릇에 담길 내용물일 것이다.

 즉, 자식 또는 부모, 혹은 아내나 남편으로서의 해야 할 일이 역할이라면,

 그 일로 인한 결과에 대한 평가가 바로 책임일 것이다.

 

 누구나 시간이 쌓이면 성인이 되지만,

 진정한 성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자식보다 부모의 의지가 더 강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모양만 성인인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 모두가 기대감을 충족시키려는 부모의 욕심이 낳은 결과일 것이다

 

 자식들에게는,

 조금 섭섭한 구속이요 간섭일 수 있으나,

 어쩌면 자식에 대한 기대는 사랑의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자식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미약한 도움이나마 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더 편안하고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체득하지 않은 경험이기에, 시련을 이겨낼 만한 인내심은 채워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시련은 스스로 극복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살아가는 동안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식은 기대감보다 존재감으로 바라봐야 한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스스로 견디고 인내하면서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경험을 키워줘야 한다.

 쉽게 이룬 성공은 바닷가에 쌓은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때로는 안쓰럽고 가슴이 쓰려도, 저 혼자 이겨갈 수 있도록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라.

 

 어차피 부모가 가진 모든 것들은,

 언제든지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자식에서 베풀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부모의 이름이나 후광이 아닌 자식의 이름으로,

 세상이란 삶의 현장에서 그 이름이 빛이 되도록 든든한 그림자가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