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순 수

눈으로 그린 대관령 풍경

소우(小愚) 2011. 12. 15. 09:30

 

 

 

   

   강릉사람이라면,

   늘 대관령을 바라보고 산다.

   찾아가지 않아도 눈을 뜨면 늘 이웃처럼 곁에 있다.

 

   그렇게,

   매일 마주보던 그 산이 소리 없이,

   오늘 아침 늙은이의 하얀 백발로 변해 버렸다

   너무 눈이 부셔 실눈을 뜨고서야 감히 쳐다볼 수 있을 만큼,

   온통 비누거품처럼 두둥실  너무도 아름답다.

 

   특히,

   남대천 끼고 늘어선 빌딩 숲 사이로,

   겨울 날 아침 해가 뜰 때 바라보는 대관령은, 

   왠지 모르게 특별하게 보인다.

 

   하루의 삶을 껴안고,

   하루가 버거운 사람들의 고단한 한숨소리를 토하듯, 그렇게 눈은 내렸다.

   호호 입김을 불며, 눈이 다져진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걸어가는 사람이 있듯이,

   눈이 와 한없이 즐거운 동심도 있다.

 

   그 속에 나의 삶도 깨어나,

   함께 고단한 일상을 시작하려 한다.

   눈이 내린 아침이면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듯이,

   우린 항상 내게 다가오는 것들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

            

   겨울 산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눈이 내린 날이 아니다.

   눈이 그친 후, 햇살에 의해 부서져 내리는 해맑은 눈 조각이,

   나무나 바위위에서 떨어진 뒤, 떨어진 그 눈이 도화지가 되어,

   남겨진 것들로 그려진 그림이, 비로소 진정한 대관령의 아름다움이다.

 

   물론 설화를 바라보는 재미도 멋지지만,

   그 것 역시 산의 아름다움을 전부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낙엽이 떨어지고 남은 헐벗은 참나무들의 회백색 물감이 쭉쭉 지나가야,

   비로소 한 폭의 그림으로 탄생되어 지는 것이다. 

   어린 날의 순백한 동심만으로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시련이라는 덧칠을 해야 인생이 되는 것이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짙푸른 소나무 잎 위에, 아니면

   꽃씨를 다 떨어뜨리고 고개 숙인 억새의 대공 위에 매달려 설화를 피운다.

   활엽은 활엽대로, 침엽은 침엽대로, 떨어진 눈은 떨어진 대로,

   남겨진 눈은 남겨진 대로 곱게 채색되어 진정한 한 폭의 수묵화가 그려질 것이다.       

 

   겨울날,

   그리는 대관령은,

   굳이 밑그림이 필요 없다.

   도화지는 간 밤 늦도록 온 산을 하얗게 채색한 눈일 것이다.

   그리고 붓과 먹은 눈이 떨어진 뒤 남은 참나무들의 회백색 줄기와 가지들이다.

   낮은 봉우리는 낮은대로, 높은 봉우리는 높은대로,

   다가오는 햇살의 움직임에 맞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명암과 원근을 만들고,

   봉우리와 골짜기가 능선의 부드러움과,

   우뚝 선 바위들은 직선의 기상이 절묘한 조화를 이룰 것이다.

 

   또한 옛 대관령 고속도로는,

   굽이굽이 아흔 아홉 구비 전설이 되어 여백으로 남겨질 것이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에다, 자신의 추억과 의지라는 색과 선이 그려지면,

   자신만의 그림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이처럼,

   나무들 위로 내린 눈이,

   바닥으로 떨어진 뒤 바라보는 대관령이야 말로,

   진정 대자연이 그린 완벽한 수묵화이다.

 

   나에게 대관령은,

   늘 이렇게 마음속에서 한 폭의 그림으로 남아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어느 겨울날 아침 눈을 뜨고 문을 열었을 때,

   뜨락이 차도록 내린 눈의 풍성함이 너무 그립다.

 

   여름에는,

   주로 밭일을 도와야 했으나,

   겨울은 방학만 하면 방학이 끝나는 날까지는,

   거의 모두가 나의 세상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나의 대관령에 대한 즐거운 지난 날 겨울이야기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눈이 내리는 겨울날이면 어김없이,

   동심이 깃든 대관령을 그리게 된다.

 

   멀지 않아,

   나의 삶 역시도 

   눈 내리는 어느 겨울밤의 작은 이야기로,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추억속에,

   어느날 첫눈처럼 남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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