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나의 명상록

알면서도 모르는 척

소우(小愚) 2011. 6. 2. 11:05

 

◆ 허상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해도,

삶은 먹고 살기 위한 발버둥과 다름 아닙니다.

좋은 말로 무슨 가치관이니 철학이니 하면서 삶을 추켜세우는 것은,

어쩌면 자신에게 하는 위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한 것이 삶이라 하면,

스스로가 너무 초라한 것이 아닌가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는 동안에 얻는 기쁨은 행복으로, 슬픔은 불행으로 나누어 삶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너무 자신의 인생이 초라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사실 행복이나 불행은,

사는 동안에 자신이 만든 허상인지 모르겠습니다.

즉 스스로가 만든 가치이며 기준인 것이죠.

그래서 상황에 따라 중심을 잃고 감정에 치우쳐 우왕좌왕하게 되는 것 갔습니다.

 

죽을 것만 같았던 괴롭고 고통스럽던 힘든 시간도,

세월이 흐르면 오히려 추억으로 변해 그리워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인생이란 커다란 줄기를 만들어 세워보려 애를 쓰지만,

지나보면 도대체 만족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어쩔 수없이 자신을 팔 때인 것 같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것 역시 삶의 하나의 방편이라 자위할 수 있겠지만,

결코 자신은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

시간이 더해질수록 <그 때 왜 그랬을까?>하는 후회만이 아니라,

결코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게 됩니다.

 

평상시는 생각지 못할 일이지만,

잘못을 저지를 때는 이처럼 마치 눈에 뭐가 덮인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욕심이란 놈이, 자존심이란 놈이, 앞을 가려버린 결과입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충격적인 사고나 사랑의 아픔만이 사람을 비참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보다 더 비참하게 하는 것은 모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이익을 위해 자신을 속이는 행동입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지만,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처럼,

아무런 죄책감 없이 반복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사건이 터지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외면당할 때,

비로소 알게 되는 비참함은 상상하기조차 싫을 만큼 지대하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외면하는 것만큼 큰 비참함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수천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악으로 얻은 성공을 믿지 마십시오. 

아무리 큰 성공을 얻어도 마음이 불편하면 그것은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할 뿐입니다.

 

마음이 편한 것이 최고입니다.

때린 놈은 오므리고 자지만 맞은 놈은 두 다리 뻗고 잔다.는 속담도있습니다.

평생 죄업의 등짐을 지고 죄책감에 빠져 살지 않으려면,

조금 덜 먹고 가난해도 스스로 용서할 수 있는 한도를 지켜야 합니다.

 

나는 아무렇지 않아도,

내 곁에는 나를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의 바람이,

함께 함을 결코 잊으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