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순 수

달이 전하는 말

소우(小愚) 2010. 7. 26. 14:43

 

 

        

 

◆◆ 달이 전하는 말

 

기억난다.

한 여름 더위에 지쳐,

문득 잔에서 깨어나 창을 열면,

눈앞에 밀려들 듯 다가오는 여름 밤하늘이 기억난다.

여름 날 소나기라도 내린 뒤의 서늘하고 그 청명하던 별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 말이다.

 

잠든 아이의 눈망울처럼,

순진한 얼굴로 커튼사이로 은근슬쩍 넘어오던,

노랗게 물들이며 스며들던 달빛자락이 눈에 선하다.

달이 떠오른 밤하늘은 유난히 아름답다.

때로는 만월로, 때로는 새끼손톱처럼 작아져, 산그늘에, 구름사이에,

어린아들이들이 숨바꼭질하듯 은근하게 다가온다.

 

이런 달이,

떠오른 밤하늘은 낮에 본 그 하늘이 아니다.

구름도 그렇고, 짙푸를 정도로 파랗던 하늘도 그렇다.

심지어 적막하기만 하던 바람도 그 무엇엔가 깜짝 놀란 듯,

날개를 퍼득거리는 새가 되어 살아난다.

 

그리고,

낯선 거리를 배회하던 수많은 사람들도,

모두들 이제는 잠에서 깨어난 듯 소란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단지 하늘에는 그저 달 하나가 덩그러니 떴을 뿐인데 말이다.

 

이처럼,

달은 심상의 그림자다.

각자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꿈들이,

현실인 양 밤하늘에 살아 돌아다니고 있음이다.                 

때로는 그리움으로, 또 때로는 원망으로, 사랑이 되기도 하면서,

이별이 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밤은 안식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밤하늘의 달 역시도,

왠지 까탈스럽지 않고 편하다.

하지만 실상 밤은 어둠이 지배하는 공간이기에 난폭하고 변덕스럽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처럼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앞뒤가 맞지 않은 행동은 예사스럽고, 화가 나면 걷잡을 수 없다.

 

어둠이라면,

낯선 거리에 혼자 버려진 듯,

으레 두렵고 칙칙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아침이 되면 항상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듯,

신선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 달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는 날이나 해가 환희 비치는 날에도 달은 지는 법이 없다.

그럼에도 우린 아침이 되면 마치 달이 사라진 것 같은 환상에 빠지게 되는 것도,

바로 달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 수 없다 해서,

마음에 남아있는 달에 대한 환상마저 아무 일 없듯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평생 짊어져야 했던,

마음속에 자리한 추억이란,

놈의 심술궂은 장난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들은 항상,

사람의 등 뒤에 숨어있는 그림자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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