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순 수

생각나는 사람

소우(小愚) 2010. 1. 26. 11:22

   살다보면 딱히 기억하지 않아도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첫사랑의 여자나 회초리를 드시던 스승도 그렇고, 돌아가신 부모 역시 그렇다.

   자신은 몰랐어도 은연 중 자신의 인생에 있어 특별하게 기쁨이나 슬픔으로 자극이 되었던 시점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누구의 기억 속에 우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연으로 맺어져 서로 함께하는 동안은 서로에게 진심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왕이면 기억조차 하기 싫고 하루속히 잊고 싶은 사람보다, 생각만 떠올려도 기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런 것까지 생각하면서 살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남에게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떠나버리면 아무런 상관없이 깨끗해져야 하는데, 사람의 관계란 언제나 흔적이 남는다.

   그것이 아픔이 되었든, 고통이 되었든, 남겨진 사람에게는 고스란히 평생 지울 수 없는 상흔으로 남아버린다.

   뒤돌아서서 아무 일 없듯이 툭툭 털어내고 떠나면 그만인 것을, 미련이라는 꼬리를 냉정하게 자르지 못하고 머뭇머뭇 거리게 된다.

   그것은 슬픔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쉬움도 아닌 마음속에 남은 자신에 대한 쓸쓸함일 것이다.

   마음은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후회일 것이다.  

  

   사람들은 한 곳에 머물기 싫어 늘 새로운 길을 찾아가지만 ,

   연어가 모천을 찾아 회귀하는 것처럼,

   사람이 움직이는 동선은 언제나 관념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 동선을 따라 인연들이 얽히고설켜 만남이 되고, 이별이 되고, 또 기쁨이 되고,

   슬픔이 되기도 하였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길을 따라 배회하게 된다.

   좀더 나은 꿈의 출발점도 그 길이였으며,

   좌절의 고통으로 힘들어 방황하다 돌아온 곳도 그 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뜨거운 열정을 불사르던 곳도 그 길이고,

   사랑을 묻었던 곳도 그 길이다.

 

   원망과 질투와 눈물과 아픔이 뒤엉켜 인생이 되어진 그 길은,

   그저 운명이 되어, 내가 사랑하고 원망했던 모든 사람들은 추억이란 상자에 담아,

   내가 그리워할 때마다 이렇게 불쑥불쑥 나타나 과거와 현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된다.


   요즈음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많이 생각난다.

   원하고 바라는 것이 다른 가족의 소망을 말없이 묵묵히 등에 지고,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혼자 아파하고 힘겨웠을 아버지의 그 짐들이, 이제야 가슴 가득 아픔으로 다가온다.

   같은 남자라서 그런지, 젊어서는 아버지의 못남이 원망스럽기만 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버지로서도 어찌할 수 없었던 상황들이 하나 둘 마치 새로운 세계를 접하듯 알게 되는 것 같다.

   아버지란 존재는 화를 내고 말을 하고 싶어도 그저 가슴속으로 말을 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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