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순 수

저 바다에 누워

소우(小愚) 2009. 10. 16. 08:53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겉면에 불과하다.

    즉, 오랜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이름 지어진 그대로의 형상을 보는 것이다.

    길을 가다 황금빛 들녘에서 농부가 추수하는 풍경을 바라보면 너무도 평화로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농부의 얼굴은 주름지고 손은 거칠며 옷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힘든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속을 보지 못하고 겉만 보면 우리가 접하는 자연은 한없이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하다.

    바다 역시 그렇다.

    아침이나 저녁햇살이 녹아드는 바다를 보면 그 바다에 누워 가슴가득 따스함을 느끼고 싶어진다.

 

    동해안을 인접하고 살아서인지 난 자주 바다에 나간다.

    바다래야 그저 해안에 서서 관망하거나 해안을 따라 걷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바다에 나오면 근심걱정일랑 모두 잊어버릴 수 있어서 좋다.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거칠 것 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바다를 멀리서 보면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할 것 같은 바다도

    바람 부는 날 용트림하듯 솟아오르는 파도를 보게 되면,

    사내의 거친 야성을 느끼게 한다.

 

    조용한 날 해변에 남겨진 포말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지만,

    거친 바람이 부는 날에는,

    겨울날 눈밭과 같은 포말이 해안가득 들어차 신비롭기 그지없다.

    또한 둥근 달이 떠오른 잔잔한 밤바다에다 모래 한 줌을 뿌리면,

    수많은 모래가 만든 물방울들이 마치 고기 비늘처럼 물보라를 일으키고,

    점점이 흩어지는 방울방울마다 달빛을 품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다.

    어둠과, 검푸른 바다와, 노란 달빛과,

    무리지은 수많은 별들이 연출하는 밤바다의 신비로움을 볼 때마다,

    굳이 시인이 되지 않더라도 우린 저절로 시적 감상에 빠지게 된다.

    바다와 오래 벗해서 살아온 뱃사람이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냄새만 맡고도 비가 올지 태풍이 올지 아는 것처럼 말이다.  

 

    열심히 삶을 사는 사람은 그 크기만큼의 외로움도 갖고 살기 마련이다.

    이러한 외로움은 다른 사람의 위로에 의해서도 덜어지지만,

    산과 바다와 같은 자연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마음의 위안을 받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쩌면 우린 불행과 같은 좋지 않은  것들을 보기 싫어 마음의 문을 닫지만,

    눈은 항상 행복과 같은 좋은 것들만 바라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내가 바라보는 바다는 늘 푸근하다.

    바람불어 파도가 치는 바다도 거칠고 무섭다는 느낌보다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있어 좋다.

                                                                                       나이가 먹을수록 왠지 움츠려들고 활기를 잃어간다는 느낌이 드는데,

    바다를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가득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어 좋다.

 

    행복이나 불행은 모두 상대적이다.

    즉, 내가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나보다 못한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하고,

    내가 불행하다는 느낌도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비교의 대상들은,  항상 내 눈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다.

    멀리 바라보면 나보다 못한 사람이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내가 바라보는 그 사람에 의해 불행하기도 행복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똑같은 행위라도 남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면,

‘나쁜 놈’이라 욕하면서도,

    내가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어쩔 수 없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게 된다.

    사랑에 있어서도 남들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 자신에게도 타인에게 하는 것과 똑같은 잣대를 들어대기란 쉽지 않은게 사람의 본심인 것 같다.


    행복이나 불행이나 모두 내 마음이 가진 욕망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파도가 거친 숨소리를 내는 별들이 쏟아지는 밤바다를 거닐며 지나온 나의 불합리한 모든 것들이 스러지는 포말처럼,

    한순간의 지나치는 흔적으로 남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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