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은 계절에 기대어
황금색 들판이 시간에 떠밀려간다
그리고 어둠이 차지한 그 자리에 인생은 계절에 기대어
달빛에 부서져내리듯이 억새의 날개 깃위로 하얗게 흩날린다.
햇볕 잘드는 마당이나 한적한 인도에는
발가벗은 낱알들이 서로 눈부신듯 얼굴을 가리고
먹이를 찾는 참새들의 날개짓이 요란하다.
논둑에는 결실을 가득 껴안은 해바라기가 고개 숙이고
까까머리 사내아이의 손짓에 메뚜기가 흠칫 놀라 뛰어간 빈자리에는
어스레한 초승달이 슬금슬금 지나간다.
바람이 아우성치던 날
밤하늘에는 별들이 서로 경쟁하듯 반짝거리고
무리지어 핀 억새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백발이 되었다.
어둠이 찾아든 세상에는
별빛과 가로등과 헤드라이트 불빛이,
까만 색종이에 줄을 긋듯 그렇게 사라지고
밤 뒤에는 낮이 따라가고
내가 걸어가는 인생의 길 등 뒤로
계절의 그림자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