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 잠들다
사무실 문을 열자
햇살이 바닥에 누워있다.
빗물로 얼룩진 창 너머로
숲을 더듬고 내려오는 괘방산 햇살은
책상 위에서 어리광부리듯 한다.
붉은 옷을 입은 가을은
소녀의 사랑이 잠든 그 시절처럼
읽다 만 소설책 갈피에 끼워지고
그렇게 의미가 머물다 간 자리에는
계절이나 사람이나 흔하디 흔한 단풍 잎 하나조차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커피잔을 들고
나를 스쳐가는 시간에 기대어 서서
나는 잠시 가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