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 억/산행 및 여행

2009년, 백두대산 평창 고루포기산

소우(小愚) 2009. 9. 21. 17:26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지만 나무들에게는 이별의 계절이기도 하다.

     비바람을 견디고 만들어진 열매들은 농부에게 수확의 기쁨이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하여 잎은 땅에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열매는 씨앗을 잉태하여 탄생으로 돌아오지만,

     잎은 땅에 떨어져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죽기 전에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피운다는 의미의 회광반조라는 말이 있다.

     가을 산행의 백미인 단풍이 주는 즐거움은

     아마 활엽수들이 만들어내는 마지막 생명의 불꽃일 것이다.

 

 

 

 

     참나무류의 갈색빛깔의 낙엽과,

     은행나무와 싸리나무의 노란빛깔의 낙엽,

     그리고 백당나무와 옻나무들의 검붉은 빛깔의 낙엽 등등.

 

     하지만 단풍나무의 단풍은 이런 자연이 주는 모든 색깔을 다 품고 있다.

     때 이르게 일찍 물든 것은 일찍 물든 그대로,

     늦게 물든 것은 늦은 대로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아직 단풍을 감상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이지만.

     고루포기산의 활엽수들은 하나둘 이별을 준비하기 위해 ,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피우고 있다

 

 

 

    

     고루포기산(해발 1,238m)은,

     대관령에서 닭목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등산로 중간쯤에 별 의미없이,

     고루포기산을 나타내는 나지막한 표지석이 자리잡고 있다.

 

     고루포기란 이름은,

     가지가 탐스럽고 소복하게 많이 퍼진 어린 소나무를 일컫는 다복솔이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이 등산로는 길이 험하지 않아 겨울등산로로 각광받고 있다.

 

 

 

 

     오늘의 산행은

     대관령-능경봉(1,123)-해운의 돌탑-샘터-전망대-고루포기산 까지

     편도 6.3km를 왕복하는 코스다.

 

     이 등산로는 늘 안개가 많이 끼어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워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가 쉽지 않지만,

     오늘은 하늘도 전형적인 푸른 가을하늘이고 시야도 좋다.

     이 때쯤이면 대관령은 차와 사람으로 넘쳐날 터인데 벌초 때문인지 한가하다.

 

     가을에는 봄처럼 만개한 야생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능경봉에 이르는 등산로 주변에는 들국화가 곱게 피었고,

     어린시절 인근 야산에서 캐어 약초로 팔던

     투구꽃(돌쩌귀)이라 불리는 초오(草烏) 꽃이 아름답다.

 

     땀이 조금 솟을 무렵 능경봉 정상에 이르자 강릉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잠시 쉬면서 고루포기 산까지의 등산로를 다시 한번 숙지하고 출발했다.

 

 

 

  

   고루포기산행의 중간지점인 샘터까지는 2.6km로,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아늑한 숲길을 따라 신갈나무와 산철쭉, 그리고 단풍나무가 울창하다.

   아직 단풍들이 본래의 색을 완연히 들어내지는 않았지만,

   곳곳에는 곱게 물든 단풍이 듬성듬성 물들어간다.

 

   발걸음도 가볍게 산행의 즐거움을 누리던 시간도

   샘터를 기점으로 오르막길이 연이어져 있다.

   오르막길이라 하여 급한 경사는 아니지만 내려오던 익숙함이 조금은 힘들게 한다.

 

 

 

 

     나지막한 경사를 따라 1시간여를 가면,

     전망대로 오르는 가파른 길을 만나게 될 쯤 연리지 나무의 신비와 만나게 된다.  

     참나무가 갈라져 자라 하나로 이어진 나무와 전혀 별개로 태어나 이어진 형태로,

     오랜 세월을 함께 견디며 자란 모습에 주변에서 오래도록 머물게 한다.

 

     여기서 급경사 길을 따라 전망대까지는 땀을 흠뻑 흘릴 정도로 힘들다.

     그렇게 힘들게 오른 전망대에서 맞이하는 풍경은 너무나 아름답다.

     대관령면 고원도시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가득 들어찬다.

     그리고 삼양목장과 한일농산의 푸른 초원과

     풍력발전소의 하얀 날개는 구름처럼 흩어진다.

     여기서 경치를 감상하며 땀이 잦아들 쯤, 마지막 구간인 1km의 고루포기 산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고루포기 산 정상은

     등산로 옆 표지석이 전부인 그저 밋밋한 조금은 실망스러운 정상이다.

     정상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내 발길을 품고 있으리라.

 

     정상에서 돌아오는 산행은 의외로 만만찮다.

     오르느라 피곤이 쌓여서인지 장단지가 땡기고 발걸음이 무겁다.

     하지만 인생의 여정이 그렇듯이 힘들다고 포기할 수 없지 않는가?

     한발 한발 걷다보면, 언제 힘들었는지 모르게 이미 지나온 과거의 발자취로 남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