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 억/산행 및 여행

2009년, 강릉삼포암 가는 길

소우(小愚) 2009. 3. 16. 13:43

 

       하얀 실구름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길게  뻗어 흐르고,

       그 사이사이로 햇살이 눈부신 황금을 쏟아 붓고 있는 완연한 봄이다.

       풀어졌다 뭉쳤다 뚜렷한 길도 없이 흐르는 실구름이 파아란 하늘위로

       낙서하듯 흘러간다.

       이런 날이면 파아란 하늘은 그저 처다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추억할 수 있음은

       그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가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몇 년 전부터 대관령을 즐겨 등산하면서도

       한번도 학창시절 추억이 깃든 삼포암(성불사)을 볼 수 없어 무척

       아쉬웠던 터라 오늘은 작심하고 찾아 나섰다.

       예배를 다녀온 아들 녀석을 목욕시킨 후  간단히

       아점(아침이라 하기에는 늦고 점심이라고 하기에는 빠른 식사)

       하고 대관령으로 출발했다.  

       학창시절 시내버스를 타고 가마골(성산면 어흘리)에서 내려

       개울을 따라 올라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서 대관령 옛길 들머리인

       대관령 박물관에 차를 주차하고,

       수량이 풍부한 왼쪽 개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제민원까지 올라갔으나 폭포다운 물줄기는 보지 못했다.

 

       하제민원에서 자판기커피를 한잔 마시며

       이대로 등산을 할까 하고 망설이는데 제왕산 등산을 마치고

       하산하는 고등학교 동기 녀석을 만나 물어봤으나

       어렴풋이 기억은 나지만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저런 잡다한 안부를 나누다

       대관령 휴양림 계곡의 개울이 생각나

       혹시 그 쪽이 아니었나는 쪽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동기의 차를 얻어 타고 개울입구에 내렸다.  

       하지만 개울 아래쪽에는 펜션 단지가 고급스럽게 자리하고 있고,

       입구에는 숲이 우거져 엄두가 나지 않는다.

       들어갈까 한참 망설이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길가 산소옆에 산수유가 노랗게 피어 사진이라고 찍을까 싶어

       들어가다 조금 위로 아담한 암자가 보였다.

 

       그 암자를 보는 순간,

       그동안 사라졌던 기억의 편린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암자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논뚝길을 위태롭게 걸어서 들어가야 했고,

      거기서 삼포로 가려면 때기밭을 지나 가시나무 넝쿨을 헤치며

      조금 올라가면 폭포가 나타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삼포암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예전 논이었던 묵밭(농사를 짓지 않고 버려둔 밭)을 따라

          올라가다 냉이와 쑥을 캐시던 비구니 두 분을 만나 삼포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지금은 숲이 우거지고 길이 험해 올라가기 어렵다고 했다.

          학창시절 삼포에서 밥해먹었던 기억이 나서 찾아가노라고

          하자 예전 삼포암은 삼포근처에 있었으나

          박정희대통령 시절 화전정리의 일환으로

          지금의 위치로 내려왔고, 지금은 성불사로 불린다고 했다.

          묵밭이 끝나는 지점에는,

          아직도 삼포로 가던 등산로 흔적이 희미하게 나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이내 비탈길이 위험천만해

          아예 개울로 내려가서 올라가기로 했다.

          개울에는 아직까지 겨울 내내 얼었던 얼음이 채 녹지 않고

          봄을 재촉하고 있다.

 

          또한 개울을 따라 버들강아지가 피어나고 비탈면으로 팍새가

          여린 잎을 삐쭉 내밀고 있다.

          개울을 오르며 봄이 오는 소리를 듣다보니,

          어느새 삼포의 웅장한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삼포는 20m의 물줄기가 폭포를 이룬 3개의 폭포가 연이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방이라도 시원한 폭포 밑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캠핑의

          분을 만끽하던 그리운 얼굴이 시나브로 스쳐지나가는 것 같다.

          그렇게 어렵게 찾은 삼포는 대관령 휴양림 입구 바로 아래

          숲으로 가려진채 신비를 감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