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난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젊은 날에는 인생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고,
나에게만 주어진 무슨 특별하고 대단한 것 인양 착각하고 산 적이 있다.
사랑에 인생을 걸고, 이별에 삶의 전부를 잃은듯이 아파하고,
우정이라면 만사를 팽개치고 달려갔었다.
하지만 나이들수록,
감성적인 열정이 식어가고,
그 자리에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 버렸다.
시시콜콜한 일상과 단상이 사소한 것 하나하나와 씨름해야,
한 발짝이라도 뗄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기에,
매일 다가오는 일상의 지난함과 고단함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일일이 다 참견하고 살아간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쪽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요즘 사람들은,
복잡하고 무거운 것들을 너무 기피하고 외면하는 것 같다.
나도 그렇지만 그저 자신에게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산다.
하지만 닥쳐야 할 일들은,
언젠가는 닥치게 마련인데 회피한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기에 힘들더라도
염세적이고 즉흥적인 행복 추구보다는,
내게 닥칠 시련이나 어려움을 이겨낼 체력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 극복할 생각은 하지 않고 시간에 맡기거나 지인들의 도움만 바라는 경향이 있다.
작금에 처한 청년실업대란 역시 이러한 현상이 하나의 요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모두들 힘든 일은 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적성에 맞지도 않으면서 대학을 진학하고,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할 자리가 없으면 군에 입대하거나 대학원에 들어간다.
부모가 능력이 있어 뒷바라지를 할 형편이 되면 그런대로 괜찮지만,
그렇지도 못한 학생들까지 덩달아 따라간다.
부모는 밤낮으로 일해도,
자신의 노년을 준비도 못하고 허리가 휘청거리고
있건만, 특별한 각오나 비젼(vision)없이 부모의 지원만 바란다.
성인이 되었으면 자신의 삶은 스스로가 책임지려는 마음의 자세와 조금이라도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이 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는 사회라는 정글은 결코 자신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놓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싸워 이겨야만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도전을 이겨 내야만 한다.
능력과 적성에 맞는 자리가 주어지면 좋겠지만,
자신의 자리가 없으면 능력을 낮추어서라도 도전해야 할 것이다.
살기 싫다고 안 살 수 없는 것처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듯,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일에 귀천이 없음은 다 아는 사실인데도,
자신에게만은 멋지고 품위 있는 자리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스스로를 낮추지 못해서 그렇지 아무리 일이 없다 해도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것이 사회다.
나의 아이도 그렇지만 의지가 너무 없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엄마를 찾는다.
무슨 일이든 도와준 부모의 책임이 없다 할 수는 없지만 도무지 스스로 하려 하지 않는다.
먹을거리도 자신이 즐겨하는 것만 먹으려고 하고,
자신이 하고 싶지 않으면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하지 않는다.
“크면 변하겠지?” 란 사랑하는 마음이 그만 ,
방심이 되어 쓸데없는 것에 고집만 부리는 아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안스러운 마음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랑은 결코 사랑이 아니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내버려두는 것이,
오히려 아이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게 하는 일이다.
이제라도 난 나의 아이들이 가벼움만을 쫒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당당하게 마주서서 이겨내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