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 억/산행 및 여행

2008년, 꿈의 능선 설악산공룡능선

소우(小愚) 2008. 11. 3. 11:59

 

 

◇ 공룡능선 초입에서

 

 

 

새벽 5시 50분.

소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밖을 나서자 주위는 온통 어둠에 휩싸였다.

매표소에는 입장하려는 등산객 대여섯 명이 있을 뿐,

날이 밝아지기를 기다리는 듯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

 

소공원내로 진입하였으나

소공원은 어둠에 묻혀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갈 정도였다.

만남의 광장에서 등산화를 조이고 배냥을 정리한 다음 신선대를 향해 길을 나섰다.

그 아름답던 숲도, 계곡도, 산봉우리도 어둠에 잠겨버리고,

오롯이 숲 사이로 하얀 자갈이 깔린 등산로만이,

내가 가야할 길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무섭다.

중학교 때 십오리 등하교길을 걸어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홀로 숲에 남겨진 것은 처음이다.

바스락거리는 나의 발자국소리나 나뭇가지의 흔들림에서 조차 흠칫 놀라게 된다.

이상스럽게 생긴 바위나 고목들도 꼭 짐승의 형상으로 다가오는 것 같고,

바람이 멈춘 모퉁이를 돌 때는 누가 꼭 옷깃을 잡아당기나 하듯이 머리가 쭈삣 곤두선다.

 

온 몸이 땀으로 젖을 즈음,

와선대를 지나자 서서히 숲의 윤곽이 들어난다.

계곡의 물소리가 정겹게 들리고, 산봉우리의 형태가 어슴푸레 드러난다.

그리고 시시각각 단풍이 든 잎새들이 제 모양을 갖추고 깨어난다.

 

어둠에 묻혔던 숲이

깨어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차라리 그것은 묵화가 수채화로 변하는 과정이며,

살아있는 생명의 환희라 불러도 좋으리라.

이러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나 역시,

이 호젓한 산길에 덩그라니 남겨지길 원했는지도 모른다.

 

천불동 계곡의 수문장인 귀면암을 지났건만,

여전히 사진은 후렛쉬만 번쩍거릴 뿐 찍혀지지 않는다.

드디어 오련폭포에 이르러서야 나에게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촬영할 기회를 주셨다.

오는 도중 귀면암 정도에서 일출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었으나,

태양은 이미 구름속으로 은근슬쩍 떠올라,

산자락 사이로 연한 주홍의  해무리만 보여줘 무척이나 아쉬웠다.

 

양폭산장에 도착하니 7시 40분,

산장에서 자고 등산을 준비하는 등산객의 분주함이,

양폭의 우렁찬 물소리와 더불어 시작된다.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르고 희운각을 향해 출발했다.

 

양폭의 아름다운 폭포를 감상하며,

급경사철계단을 따라 30여분을 오르자,

지난 주 인산인해로 인해 등산을 포기했던 희운각까지의 마지막 경사진 돌계단이 나타난다.

그렇게 사람으로 넘치던 등산객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양폭산장에서,

희운각산장에서 일어난 사람들이,

대청봉의 일출을 보고 하산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이 오르막돌계단길은 정말 너무 힘들다.

 

약 1km지만,

한시간이 넘게 몇 번이나 쉬면서 고개에 오르자,

마등령 길과 대청봉으로 가는 갈림길인 무너미고개에 도착했다.

이 갈림길 전망대에 내려다보는 천불동 계곡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새색시처럼 고운 자태를 들어낸다.

 

8시 52분,

드디어 내가 그토록 다시 가고 싶어 했던 공룡능선이다.

공룡능선의 그 장엄한 광경은 늘 그자리에서 멋스러움을 더해가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세월을 뒤로하고 다시 찾아온 느낌이다. 

공룡능선에 서면 저절로 경외감이 들게 한다.

                          

공룡능선

외설악과 내설악을 남북으로 가르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능선으로 그 생긴 모습이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게 보인다하여 공룡릉(恐龍稜)이라고도 불린다.

공룡릉은 보통 마등령에서부터 희운간 앞 무너미고재까지의 능선구간을 가르키며,

그 길이는 편도 5.1㎞에 이른다.

 

공룡능선에 들어서자 처음부터 난코스다.

돌계단을 지나자 절벽에 박아놓은 밧줄을 붙잡고 올라야 한다.

절벽을 오르자 나타나는 장엄한 풍경은 이 힘겨움을 압도해 버린다.

대청봉의 아름다운 산세와 맞조차편 계곡의 풍광은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아예 힘겨움을 언급하기 싫을 정도로 압권이다. 

 

눈으로 마주 달려들 듯,

다가오는 갖가지 모양의 봉우리와

삐죽삐죽 멋을 뽐내는 기암괴석들이 주는,

자연의 신비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할 말을 찾지 못했다.

 

마등령까지 내내,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내내 보여지는 대자연의 신비로운 풍경은 한마디로 천불동 계곡은 새 발의 피다.

물론 자연은 그 나름대로의 멋을 자랑한다지만,

공룡능선은 그만큼 장엄하고 매력적이며, 왜 공룡능선이 설악을 대표하는 절경인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게 하는 산행인 것 같다.

 

능선길은,

기암절벽과 산봉우리의 아름다움을 즐기기ㅇ에 제격이다.

또한 계절로는 새싹이 돋기전 초봄 또는 늦가을이나 초겨울이 좋다.

활엽이 떨어진 뒤 나목은 시야를 넓게 해주고 자연을 감상하게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능선은 앞 뒤와 양쪽을 다같이 감상할 수 있다.

공룡능선은 이러한 즐거움을 누리기에 그만이다

               

오늘은 너무 심할 정도로 바람이 불어 아쉽다.

정상의 바람이 너무 거세 몸이 흔들거리고 위험천만 해,

오래도록 설악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를 앗아가 버렸다.

천불동을 오르며 벗어놓았던 바람막이 옷을 꺼내 입었지만 손이 곱을 정도로 춥다.

오르고 내려가기를 반복하며 3시간여를 내려오자 마침내 마등령이 보인다.

 

마등령(馬等嶺, 1,220m)은,

마치 말의 등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의 미시령, 남쪽의 한계령과 더불어 태백산맥을 가로지르는 주요 통로로,

지금은 동쪽 비선대와 서쪽 백담계곡을 잇는 주요등산로이다.

            

현재시간 11시 50분,

모처럼 온 길이라 춥기도 하고 혼자라,

그저 아름다움에 취해 오다보니 너무 빨리 와 버렸다.

기억이 조금 희미하긴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인 1978년 여름,

친구들과 어울려 다녀간지 30년 만이다.

 

지금도 특별히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청바지에 워커를 싣고 걸어서 사타구니가 벌겋게 까지고,

발가락에 물집이 생겨 고생스럽던 기억만 남아있다.

물론 모포에 버너, 코펠에다 텐트, 그리고 쌀과 통조림, 감자, 김치 고추장 등등,

배냥에 넣어 지고 급경사를 고개를 숙이지 않고는 올라갈 수 없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마등령 인근 주변은,

온통 신갈나무 숲으로 둘러 쌓여있다.

마등령 정상 조금 못 미쳐,

비선대와 만화로 유명한 오세암을 지나 백담사로 가는 등산로와 갈라진다.

여기서 비선대까지는 3.5km로 3시간 정도의 길이다.

 

마등령을 내려서,

점심을 먹기 위해 조망이 좋은 곳을 찾다 너무나  멋진 곳을 찾았다.

맞은 편 절경은 물론 소공원과 멀리 속초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다 시기와 때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정상의 단풍을 보려면 10월 초순,

계곡의 단풍은 중순, 소공원의 단풍은 하순이 적당하다.

 

지난주에 볼 수 없었던,

곱게 물든 단풍이  신흥사에서 신선대,

금강굴로 가는 등산로 주변을 온통 오색의 물결로 수놓고  있다.

 

소공원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2시 50분,

오늘 12시간 여정을 계획하고 다소 서둘러 길을 재촉해서인지 9시간이 채 안 걸렸다.

다소 무리해서 왼쪽 다리가 조금 아프다.

그렇지만 정말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산행을 해서인지 기분은 너무나 좋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 일정은,

마등령을 거쳐 백담사에 이르는 산행을 하고 싶은데,

승용차를 이용한 산행이라 종주를 할 수 없음이 너무 아쉽다.

 

 

◇ 일시 : 2008년 11월 02일

◇ 코스 : 소공원-귀면암-양폭산장-무너미고개-공룡능선-마등령-소공원

◇ 소요시간 : 9시간

 

 

 

 

 

 

 

 

 

◇ 무너미고개 전망대에서의 풍경

 

 

 

 

 

 

◇ 공룡능선 입구 오르막

 

 

 

 

 

 

 

 

 



◇ 저멀리 소공원과 속초시가지가 희미하게 보인다

 

 

◇ 측백나무군락지

 

 

 

 

 

◇ 마등령정상이정표

 

 

 

 

 

 

◇ 마등령 아래 점심 먹던 곳 - 속초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 저멀리 울산바위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