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 억/산행 및 여행

그리운 고향산야 대관령

소우(小愚) 2007. 11. 15. 11:00

오늘 바라본 대관령은 유난히 붉다.

아스라이 보이는 산자락이 서서히 어둠에 묻히고,

구름과 어둠에 가리워진 석양은 이미 싸늘한 바람자락에 떨어져 버린 단풍잎새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늦가을 하늘을 온통 붉은 옷으로 갈아 입히고 있어 여간 신비롭지 않다.

 

그곳에 사는 국사 서낭당 산신령께서,

독야청청한 금강송이 우거진 산골짜기 폭포에 앉아 인간세상을 돌아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복을 입은 곱디고운 여인네의 소매자락 같은 산줄기가 유난히 가까이 내려 앉는다.

가볍게 조깅하는 나의 발걸음 따라 대관령의 바람소리가 머리카락을 흐트리고,

하나 둘 나타나는 동해바다의 고깃배의 조어등 불빛과,

빌딩숲 사이로 도망치듯 달아나는 헤드라이트와 가로등 불빛이,

찬바람에 으스러지듯 늦가을의 정취로 깨어난다.

 

대관령은 강릉시와 평창군 사이의 해발 832m의 령으로,

예전에 이 지역 사람들은 아흔 아홉 구비나 되는 워낙 험한 대관령을 넘어지지 않고는 넘지 못한다 하여,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 란 뜻으로 대굴령이라 불렀는데, 이 대굴령을 한자로 적어,

대관령이라 불렀다고 한다.

 

강릉에서 올라가면서,

오른쪽으로 국사서낭당을 비롯하여 선자령, 곤신봉, 삼양축산, 황병산, 노인봉으로 이어지고,

왼쪽으로는 제왕산, 능경봉, 발왕산으로 둘러쌓인 고위평탄면이 대관령이다.

 

이곳은 바람이 심하게 불어 나무들이 잘 자라지 않아,

박정희 대통령 때, 산림녹화사업의 일환으로 방풍림을 조성하여,

잣나무, 전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이 조성되었지만 정상 부근은 키가 잘자라지 않아,

아직도 거센 바람을 막고 나무를 키누기 위해 방풍 울타리를 쳐서 키우고 있다.

 

때문에 선자령으로 오르는 길에는,

참나무과의 신갈나무와 졸참나무등이 묘포기 처럼 자라는데,

대부분 2m을 넘지 않을 정도로 나즈막히 자라 빽백하게 들어 찬 활엽수림은,

이때쯤이면 황갈색 낙엽 밟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절로 산행을 즐겁고,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가지마다 아름다운 눈꽃이 피어나 설백의 동화나라를 만든다.

 

대관령은 추워지는 늦가을 부터는, 

다양한 상고대와 설화가 피어 우리를 즐겁게 한다.

능선을 경계로 나무들이 평창군 쪽은 자라지 않고 나즈막 한데,

강릉시 쪽은 키가 쑥쑥 자라 언바란스한 자연 현상을 살펴보는 자연체험 현장이기도 하다.

 

가을 하늘의 구름처럼,

푸른 초원을 유영하는 양떼들이 점점이 흩어져 노니는 대관령 양떼목장과,

푸른초원이 푸른하늘과 만나서 푸른 소나무 가기를 물들인 듯한 아름다운 대관령 삼양축산은,

드라마나 영화 촬영 장소로 유명하고,  초원위 풍차는 이국적인 정취를 품고 있으며,

노인봉 까지 이어지는 능선의 설경은 거의 환상적이다.

 

대관령 왼쪽에는,

고려말 우왕이 이곳에 와서 성을 쌓고 피난한 곳이라 하여 명명된 제왕산은,

지금도 축대를 쌓던 돌과 기와가 발견되고, 대관령 곳곳을 조망할 수 있고

맑은 날에는 멀리 울릉도가 보인다는 해발 1,123m의 능경봉을 비롯,

한국 최대의 스키장인 용평스키장을 품고 있는 팔왕의 전설이 깃든 해발 1,458m의 발왕산이 있다.

 

노인봉 밑에 송천약수가 있고,

곤신봉 밑으로는 보현사와 대공산성이 있으며,

대관령 옛길과 대관령 자연휴양림이 있어 주말이면 자연을 벗삼아 가족과 연인들이 즐겨 찾는다.

 

 2007년 9월 1일자로,

도암면에서 대관령면으로 개명된 이곳은 76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도암초등학교와,

횡계초등학교, 도암중학교로 이어지는 스키의 명문은,

우리나라 동계스포츠의 산실이다.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강원도민은 물론,

이 지역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도전하였지만 러시아 소치에 아깝게 실패했으나,

아직도 올림픽 유치에 대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왜 안되는 일에 계속 도전하느냐?>  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현재 대통령 선거 공약에도 정부에서 강원도를 위해, 사회인프라를 마련해 줄 소지는 많지 않다.

 

재원이 적은 강원도가 살 길은,

동계올림픽 같은 지구촌 축제의 장을 강원도에 유치하지 않고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없는 절박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예전 이곳에는 자고 나면 처마끝에 까지 눈이 내려,

설피나 눈썰매가 아니면 이동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던 고장이며,

나의 어린시절의 추억과 혼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다.

 

지금은 슬로프가 갖춰지고,

곤도라와 리프트를 이용하여 정상까지 올라가 스키나 보드를 즐기지만,

내가 어릴때는 에치가 박히고 벤딩처리된 스키는 부잣집 아이들만의 전유물이었고,

대부분은 벗나무나 고르죄나무로 만든 나무스키였다.

 

그것도 없어 아이들은,

비료푸대에 짚을 넣어 눈을 타다 개울에 구르던 기억은

그시절 이곳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다.

 

스키를 신고 눈을 밟고 다져야 빠지지 않고 스키를 탈 수 있었고,

스키를 신고 걸어서 어렵사리 정상에 올라야 스키대회를 치를 수 있었다.

스키를 타고 내려오다 스키가 벗겨지기기도 했고,

스키가 부러지다 못해 넘어지면 스키복이 찢어지는 곤란한 경우도 다반사였다.

또한 여자선수는 많지않아 넘어지고 굴러서라도 결승선에 들어오면 최소한 입상은 보장받기도 했다.

 

대관령은,

개나리 봇짐에 짚신을 신고 오르내리던 옛 선비들의 향취가 서린 곳이고,

신사임당의 눈물이 어린곳이고,

영서지방의 토산품을 성산 구산장, 연곡장, 옥계장으로,

해산물과 곡식이 진부장으로 등짐을 지고 나르던 삶과 애환이 함께한 선질꾼이 넘던 길이다.

 

대관령을 분수령으로,

동쪽으로 흐르는 오십천은 동해로 흐르고,

서쪽 송천에서 발원한 물은 남한강으로 흘러 가며 계곡마다 아름다운 소와 절경을 만든다.

 

강릉 출신이든 평창군 출신이든,

고향산야를 떠나 타지에 살고 잇는 사람은

<대관령>이라는 말만 접해도 왠지 기분이 싸한 느낌에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 한다. 

모천을 다시 찾는 연어처럼 고향산야를 그리워하는 귀향의 본능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