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 억/산행 및 여행

2008년, 끝없는 설원, 평창 선자령

소우(小愚) 2008. 1. 29. 15:11

◇ 설원의 매력에 취하다.

 

선자령은 산이라고 하기 보다는,

설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옳으리라.

 

완만한 경사가 진 산행로 및 여름의 푸른 초원 위로 하얗게 눈이 덮힌 산 능선을 바라 보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며, 사방이 막힘없이 탁트인 백설의 바다를 바라보는 것 같다.

마치 동해안의 푸른 바다가 포말을 이루어 지상으로 올라온 것 같고,

하늘나라 뭉개구름을 펼쳐놓은 것 같이 아름답다.

 

선자령은,

눈덮힌 겨울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나목과 나목사이를 포근하게 감싸는 백설이 그 빛을 발할 때 우리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울의 태백준령은 온통 설원으로 펼쳐진다.

 

하얗게 늘어선 오대산(1,563.4m),

노인봉(1,338.1m), 황병산(1,407.1m), 곤신봉(1,127m),

선자령(1,157.1m), 대관령(832m), 제왕산(841m), 능경봉(1,123m)등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 중 대관령은 분지를 이루고 있어, 겨울에 유난히 눈이 많이 오는데,

연평균 강우량이 1,450mm에 연평균기온이 6.1℃ 이하로 낮아 겨울철에는 항시 눈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대관령의 북쪽 선자령과 남쪽의 제왕산은 겨울 산행의 최적지로 손꼽힌다.

 

모처럼 일요일 날 누워서 빈둥거리기가 뭐해 홀로 선자령에 올랐다.

옛날 대관령 휴게소에 내려 준 후배를 뒤로 하고,

통신중계소에 오르자 강릉시내가 한 눈에 보이고 작은 산봉오리가 올망졸망 하얀 눈으로 덮혀 있다.

물기 한 점 없는 찬바람이 볼을 붉은 립스틱으로 색칠하듯 스쳐지나가지만,

너무나 청명한 바람과이 나의 기분을 산뜩하게 바꿔 준다.

 

멀리 동해바다 수평선 위의 구름은,

마치 하늘 중턱에 띠를 두른 듯 걸쳐 있고,

검은 구름은 뭉개구름을 보듬어 안아 멋진 산수화로 변하는 선자령에는

설화가 피어 사람들의 발자국속에 묻혀가는 것 같다.   

 

포장도로가 끝나는 부분의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비로서 선자령 등산로로 접어드는데, 여기서부터 선자령 정상까지는,

신갈나무 및 물푸레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눈꽃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산죽이 푸른잔디처럼 펼쳐진 위로 사이사이 억새풀이 눈 무게를 견디지 못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나무는 한 그루 한 그루 자라는데,

이곳에는 논의 벼 포기처럼  군락을 이뤄 한사람이 겨우 지나 갈 정도로 좁고,

거의 모든 나무가 대관령의 찬 바람을 견디지 못해 난장이가 된 듯,

울창한 가지마다  다양한 설화가 피어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산행의 만족을 알게 한다.

 

빽빽하게 들어차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등산로를,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으며 걷노라면,  이 세상의 온갖 시름과 스트레스는 온데간데 없고,

그저 바라보는 산야가 주는 황홀감에 절로 행복해 지지 않을 수 없다.

얼굴은 추위와 열기에 붉게 달아오르고 손은 시러 오지만,

등로에서 동해안의 푸른바다가 보이면 어김없이 허리에 까지 차오르는 눈을 뚫고 다가가게 한다.

 

<주어지는 시련을 멀리하면 단 하나의 경험조차 얻을 수 없다.> 란 말처럼

겨울 산행은 이런 작은 시련을 늘 맞이하고 극복하는 맛을 알게 한다.

눈이 덮힌 조리대 옆을 지나면 덤불을 헤치고 지나간 수많은 토끼의 발자국들이 가지런히 찍혀있어,

어린시절 토끼몰이하던 그리운 시절이 눈에 선하다.

 

고사된 나무위에 덮혔던 눈이 떨어지면,

썩은 틈사이에 자란 나무이끼들이 푸른빛을 더하고,

소주 한잔으로 잊은 추위는 나의 삶속에 작은 추억으로 자라고...

 

선자령은 언제나 인산인해다.

겨울등산의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시 초막교로 내려오는 하산 길.

마트에서 얻어 온 비닐 봉지에 오늘은 목도리를 접어 넣고, 엉덩이 썰매를 신나게 타고 내려왔다.

 

아이젠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지만,

늘 눈과 같이 생활한 우리에게는 그건 그저 불필요한 짐일뿐...

경사진 비탈길을 미끄러지면서 발썰매를 타는 기분 또한 누가 말릴 수 있으랴.

모처럼 눈썰매장으로 가는 후배의 차를 타고 온지라, 내내 동심의 세계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