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순 수

법의 선(善)과 악(惡)

소우(小愚) 2008. 7. 23. 15:06

 

  

현 사회는,

法이 사람을 지배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점차 수가 늘어감에 따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법을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법을 지키지 않으면 선이라 하고, 법을 지키면 선이라고 믿었다.  

선은 악이 있어 선이라 하고, 악은 선이 있어 악이라 한다.   

 

그러므로 영원한 善이나 영원한 惡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법이란 울안에 자신들도 모르게 점점 얽매여 사는 것이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善惡果를 따 먹은뒤 善과 惡이 생겼다는 말도 있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항상 자신조차 마음데로 절제하지 못하는 惡의 속성이 내제되어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살면서 늘 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한 일에는,

어김없이 그와 반대되는 것들이 슬그머니 나타나 유혹하니 말이다.  

이러한 욕망으로 부터 이기면 바로 善이 되는 것이고, 지면 惡이라고 말하면 조금 넌센스할려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사람이 사람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기에는,

순수한 인간의 선한 本性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적당히 惡과 타협하지 않고는 거센 세파를 이기고 나갈 수 없다.  

요즈음에는 선한 측면이 강조된 사람을 나약하고 의지박약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다.  

선하다 보니 남에게 못된 짓을 하지못하고 항상 이용되기 십상이고,

무슨일에든 약자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

  

 

 법의 고자(古字)는

'수'(水)·'치'(?)·'거'(去)의 3자가 합쳐진 것(法)이었다.  

'水' 는 수면과 같이 공평함을 뜻한다.   '치' 는 해태라고 하는 전설적 동물로서,

시비곡직을 가리는 일을 맡은 동물인데, 정의를 실현하는 상징이다.   

해태는 또한 불을 삼키는 동물로 알려져 불붙은 분쟁을 가라앉힌다고 하여,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재판을 할 때 이 해태상 앞에서 했다고 한다.   

 

'去' 는 악을 제거하는, 즉 응징적인 강제성을 나타낸 것이다.   

그 약자인 '법'(法)도 따지고 보면,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순리적인 것을 뜻하는 글자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상기(上記)의 법의 해석처럼,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  

법의 잣대에는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죄가 있는 사람이 그 죄만큼의 처별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법으로서 권위가 서고, 사회의 질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법은,

항상 권력자나 사회의 리더에 속하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변질되어 씁쓸하다.  

우리도 사회적으로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위대한 위인들이 많이 배출되었음 좋겠다.  

정말 학생들이 마음의 스승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건전한 사회가 아니겠는가?  

무엇인가 역사적 문화적인 정신유물을 계승시키고 발전시킬 가치를 지닌 사회였으면 좋겠다.

 

나라의 최고의 지도자로 퇴임한 사람들이,

일반시민으로 돌아가서도 꾸준하게 존경받고,   

선임자로서 당략을 초월하여 나라의 발전을 위해 조언자로서의 역할의 문화를 만들었음 좋겠다.  

재임기간 통치행위에 대해 잘잘못을 따져 법의 잣대를 들어대기 보다는,  

역사와 국민의 판단에 맡길 줄 하는 거시적인 마음을 가졌음 좋겠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최고의 위치에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과욕을 부린다면 그 얼마나 슬픈일인가?  

 

과욕은,

모든 일은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인식과,

타인의 능력을 배려할 줄 모르는 것에서 출발함을 알아야 한다.  

명예는 타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자기가 만드는 것이 아님을 유념하여,   

항상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만 역사에 남을 수 있는 위인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안으로 삼켜야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 수 있음을 잊지 말았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