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순 수

자가당착 [自家撞着]은 삶의 또다른 모습이다.

소우(小愚) 2008. 7. 19. 09:16

  

사람은 늘 자가당착 [自家撞着]에 빠져산다.  

삶에 대한 가치관의 모순과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착각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능력으로 얻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사랑 역시 이러한 감정의 착각에 의해 이성적으로 냉정과 절제를 하지 못하고,

감성적이며 열정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 같다.  

 

슬픔이 크면 클수록 울음을 속으로 삼키고   

기쁨이 지나치면 오히려 울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정이란 이런 모순을 갖는 속성이 있다.


인생 역시도 이런 속성을 지닌다.  

자기가 편리한데로 순리보다는 이익에 따라 자리를 옮기고서 자기 합리화 해 버린다.  

내 몸에 난 상처는 아파하지만 나로 인한 다른사람의 상처에는 무관심하다.  

상처난 나무는 그 상처를 메울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리하여 곱게 자란 나무보다 옹이가 배기고 상처투성이지만,   

비바람에도 견딜 수 있도록 더 단단하고 튼튼한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사회라는 울타리는,

인연의 뿌리에 얼키고 설켜 돌아간다.  

퇴근후나 일과를 마친 후, 가까운 사람과 모여서 낯선 곳에서 간단히 술 한잔 나누다보면,   

희안하리만치 그 자리에서 동류의 아는 사람을 만나 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과 같다.  

 

한마디로 어디 마음 놓고 어디 아는 사람 욕 한 번 시원하게 할 곳도 없다.  

항상 만나고 어울리는 그 울타리의 사람과 어울려 함께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행복과 기쁨을 얻지만,   

또한 그런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고 마음 상하고 아파하게 된다.


상처받을 때에는,

다시는 안 만날 것처럼 화내고 헤어지지만, 또 그사람으로 인해 위로 받게 된다.  

싸우다 정든다는 말이 그래서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학창시절 말썽꾸러기 아이가 더 그립고, 종아리 한 대 더 때려주시던 스승님이 더 보고파진다.  

 

이러한 극과 극이 통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다.   

사람은 누구나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태어나고 죽음에 이르는 것 또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동안의 삶의 방식은 온전히 자신의 몫인 것이다.  

즉, 행복하게 살 것이냐?  불행하게 살 것이냐는 자신의 의지하에 놓여 있다.  

 

누구나 불행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지만,

자신의 마음에 닿지않으면 어느순간 행복했던 것들도 불행이 되고 만다.  

그래서 아마 영원한 행복이나 영원한 불행은 존재하지 않다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 역시 그렇다.  

다른사람과 사는 평생의 시간 보다,

그대와 함께 있는 단 몇 분의 시간이 더 즐겁고 행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이 네게 전달되지 않아 네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랑은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친밀도로 느끼는 마음의 소리다.  

평생동안 단 한사람만을 선택하여 죽도록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랑에도 우선 순위가 있게 마련이다.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한사람을 사랑하는 순간에도 다른사랑에 눈을 기웃하고,   

죽을 것 같은 사랑을 했으면서도 채 상처가 낳기도 전에 또다른 사랑으로 가슴아파하는 것이 사람이다.  

사람들은 영원한 로멘스를 꿈꾸지만 사랑은 결국 유한한 것이다.  

 

마음속에 갖고 있던 사랑에 대한 환상은,

형식적인 사랑의 완성인 육체적 결합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점차 깨지게 된다.  

영육이 합쳐지는 오르가즘보다 더 큰 환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함께 있어도 보고파지고 그리워질 때는 바로 이러한 사랑의 순간이다.  

지나친 행복은 사실 파멸의 씨앗을 품고 있지만,

사랑은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기에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시간은 결국 나비가 변태하듯 사랑의 마음을 현실속으로 무참히 내팽개쳐 버린다.  

 

그래서 가장 상처주기 싫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주위의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게 되더라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삶의 선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어린 시절 나는 도시를 동경하고 있었다.   

붉은 가로등과 레온사인이 덮힌 도시에도 어두침침한 뒷골목의 쓰라린 인생이 있음을 몰랐다.  

온통 산으로 둘러쌓인 골짜기마다 뜨문뜨문 자리한 초가에서,

하늘거리는 밥 짓는 굴뚝연기가 초라한 가난의 증표처럼 보였었다.  

도시의 사람들은 쌀밥에 고깃국만 먹고, 근심걱정 하나 없이 행복하게 사는 줄만 알았다. 


어쩌다 대관령에서 바라보는 안개에 쌓인 도시의 불빛들이 그렇게 신비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지금은, 늘 고향의 모습과,   

코 흘리던 친구들의 순진한 동심의 얼굴과, 손이 추위에 트고 귓볼이 빨갛게 익어가도 나를 챙겨주던,

어머니와 누나의 정겨운 모습이 항상 그리움으로 녹아있다.


선과 악이, 기쁨과 슬픔이,   

행복과 불행이 항상 주변에 서성거리며 사람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가 아는 범위안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기에 어쩌면 태생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여 다시 가려하기 보다는 자기 합리화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말과 행동이 앞뒤가 맞지않는 자가당착(自家撞着)이야 말로 바로 우리네 삶의 또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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