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이란 다 그런 것
박찬호가,
20세 신출내기 새카만 후배에게 선발자리를 밀리면서,
원래 다 그런것 아닌가.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힘 쓸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한다.
한마디로 "삶이란 다 그런것 아니냐."
란 뜻이다.
덧붙여 커쇼의 투구에 대해 "인상적이었다." 라고 평가하는 의연함까지 보여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찬호의 속마음도 그랬을까?
아마 자신이 선택받기를 원했을 것이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워지기를 간절하게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박찬호라 해도 세월의 무게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야구로 말하면 이미 중년을 넘어선 박찬호로서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것이다.
박찬호의 처지가 바로 지금 중년의 직장인이, 아니 내가 처한 상황과 닮은꼴이라 할 수 있다.
나역시,
처음 입사하여 지금까지,
정말 직장의 일이 내 일이란 각오로 달려왔다.
건설경기에 따라 매출이 요동치는 중소제조업체라,
때에 따라선 야근은 물론이고 밤새워 거래처 접대를 하고 그 다음날,
아직 숙취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회사에 나와 욕조에서 찬물로 잠을 깨우면서까지 일했었다.
그 사이 노령인구의 증가와 사교육비의 급격한 인상으로 정년이 코 앞 까지 다가왔는데도,
돈을 계속 벌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아직 해야 할 일과 책임져야 할 일이 많은데 변화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박찬호의 말대로 내가 원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다.
직장에서 상사가 직접 커피를 타 먹고, 스스로 책상을 닦는 일은 이미 일반화 된지 오래다.
내가 처음 직장생활을 할 때만 해도,
새벽같이 출근하자 마자 마대자루를 들고 사무실 청소를 하는 것이 그 날 일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사무실주변이나 화장실 청소는 기본이었고,
퇴근시간이 다가와도 상사 먼저 퇴근한다는 것은 감희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고,
회식장소에서나 사석에서나 상사를 예우하는 것은 기본 에티켓이었다.
이렇게 살아남아 지금의 자리에 오르니,
후배로 부터 대우는 커녕 이제는 그 자리 마저 내려오라 아우성이다.
급격한 사회변화가 직장의 풍속을 비롯 전반적인 사회 풍토가 경쟁지상주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직장일이나 가정일이나 둘다 완벽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직장일에 치이다 보면 가정일에 소홀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불문가지다.
지금의 중년의 남자들은 남에게는 큰소리치고 사는 것 처럼 자신의 삶을 포장하지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큰소리 한 번 못치는 처량한 신세에 처해 있다.
직장에서는 짤릴까 지뢰밭을 밟듯이 조심스럽고, 가정에서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소외되어 설 자리가 없다.
그렇다고 친구와 어울려 술 한 잔 마시며 스트레스라도 풀고싶지만,
얇은 지감을 처다보면 그것도 쉽지 않고,
무리해서 과음하면 그 다음날 숙취를 이기지 못해 헤메게 되어 아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주변의 아는 사람이 한 두명씩 건강으로 고생하는 소식을 들으면,
바로 자신의 이야기인양 건강에 자신하지 못한다.
지금껏 치열한 삶을 버티어 내기 위해서 건강을 아예 잊고 살아 온 결과다.
든 자리는 몰라고 나간 자리는 안다.
란 격언처럼 수입은 빠삭한데 주말이면 각종 경조사에다 모임에다 돈 쓸 일이 태산이다.
돈 생각하면 가고싶지 않지만 앞으로 자신에게 닥쳐올 결혼이나 장례는 혼자 할 수 없지 않은가.
지금껏 자신이 살아온 삶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과 같기에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사람이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확인받아야 안심할 수 있는 존재다.
즉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고 평가받고 싶어한다.
가족에게서, 친구에게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확인을 요구한다.
하지만 스스로 존중하는 사람만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스스로 그러한 사람이 남에게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원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며 사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돈을 벌고 싶으면 돈을 주는 사람을 만족시켜야 하고,
사랑을 얻고 싶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욕망을 충족 시켜줘야 하고,
명예를 얻고 싶으면 주변 사람들로 부터 인정을 받도록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언제나 남보다 한 뼘 더 낮은 마음과 빈가슴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고 빈 것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삶의 지혜 역시 커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지혜는 바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나이든 사람을 배척하는 사회시스템이 될수록 내실이 빈약한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다.
누구나 나이가 든다.
또 나이가 들면 가정이나 사회에서 주도권을 내줘야 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다.
따라서 젊은이든 노인이든 조화롭게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정책적인 배려와 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박찬호가 처한 작금의 환경을 이겨내려는,
노력과 의지를 보면서 난 삶의 활력과 용기를 얻는다.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와 각오를 다지는,
박찬호의 아름다운 모습에 찬사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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