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무엇인가를 할 수 있기를.......
삶이 지난 뒤 무엇이 남을까?
매년 맞이하는 새해이지만 뒤돌아보는 시간은 늘어만 간다.
아마 그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점점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삶은 싫지만 그 역시 어쭙잖은 소망이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다.
그럼에도 해가 더해질수록 더 절실해지는 소망이기에 이렇게 가슴이 아리다.
어제 친구들 모임에 다녀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제는 모두들 60이 가까워지니 모임에 가도 만날 수 없는 친구들이 보인다.
어떤 친구는 몸이 아파서, 어떤 친구는 경제적인 여건이 안 되서,
그리고 또 어떤 친구는 이미 생과 이별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인연을 맺었던 지인들이 이제는 하나 둘 만날 수 없는 사람으로,
나의 삶에서 비어가고 있다.
세상이란 틈새에서 사람들에 섞여,
때로는 꿈과 희망을 쫒던 열정의 시간도 있었지만, 어느덧 인생의 황혼에 서 있는 나를 본다.
일과 삶과 사랑과 소중한 가족들의 모습에서 느껴왔던 일상의 즐거움들이 점차 삶의 무게로 다가온다.
일어나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카운트하는 심정으로 매일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마치 사회초년병 시절 삶이란 전쟁터에 다시 던져진 듯 말이다.
먹고 살 수 있는 것만으로 넌 잘 살고 있다.
이 말은 나보다 먼저 정년으로 백수가 된 친구가 나에게 건넨 말이다.
경제적인 여유를 떠나서 어느덧 일을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어쩌면 일이 곧 경제적인 능력으로 통하는 남자의 세계에선,
일의 단절로 경제력을 상실한 황혼의 사람들에게는 먹고 사는 그 일조차 녹녹하지 않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일이 없다.
어떤 사람은 자존심이나 사회적인 위치 때문에 일을 구하지 못하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핑계일 뿐, 삶의 이력이나 경험을 활용할만한 일을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이 들어 너무 돈돈 하는 것 같지만, 돈이 곧 자존심이요 얼굴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노년에는 일하는 사람이 가장 부럽다.
지나보면 삶조차 추억에 불과하다.
이익에 따라 타협하고, 자기합리화에, 이런저런 변명과 핑계로 점철된 삶의 흔적일지라도 말이다.
소중함을 알고, 도움을 기억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 역시 삶의 환희일 것이다.
단지 먹고 사는 그 일조차 한해가 더해갈수록 힘들고 버겁게만 느껴진다.
무슨 일이든 변함없이 일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 사진 : 강동면 새해 설경(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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