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고향 볼거리

신사임당 이야기

소우(小愚) 2011. 8. 13. 14:21

 

 

화페 5만 원권의 주인공인,

신사임당의 본명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신사임당은 본관은 평산이고 이름은 신인선이다.

 

사임당이란 당호는,

중국 주나라 대표적 성군인 문왕의 어머니, 태임을 본받겠다는 의미에서 스스로 붙인 것이라 한다.

문왕의 어머니 태임은 동양 최초로 태교(胎敎)를 한 여인으로 알려져 있어,

신사임당의 자식들의 교육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신사임당은 강릉 북평촌 오죽헌에서,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용인 이씨의 5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신사임당의 친정집은 3대째 딸만 태어나,

대대로 딸 중 하나가 <아들잡이>이 되어 남편과 함께 강릉에 살면서 가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19세 때 강릉 찰방으로 있던 이원수와 결혼한 후,

주로 외할아버지 이사온의 사랑으로 주변의 강릉, 평창 등지에서 살았다.

 

오죽헌은,

그들 중 넷째 딸의 아들인 권처균에게 묘소관리를 부탁하면서 상속되었는데,

집 주변에 검은 대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고 붙임으로써 유래되었다 한다.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이기보다는 현모지처에 가깝다.

현모양처라면 사후 같은 곳에 묘소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술을 좋아하고 호방한 성격이었던 남편 이원수와 사이가 좋지 않던 신사임당은,

36살에 이르러서야 집안의 살림을 주관하였다고 한다.

 

그 후 책을 멀리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남편의 부족한 점을 일깨워주고,

자식들에게는 소질에 적합한 교육을 할 줄 아는 현명한 어머니이자 슬기로운 부인이었다.

 

신사임당에 대한 평가는,

아들인 율곡의 지은 그녀의 일대기인 <선비행장>을 보면 더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어머니는 간혹 아버지께서 실수를 할 경우 반드시 이를 지적하고, 자녀가 잘못이 있으면 훈계했으며,

주변이나 아랫사람들의 허물이 있으면 늘 깨우치시니 모두 존경하며 따랐다.

 

어린 시절에는,

경전에 통달하고 글을 잘 지었으며,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고,

바느질도 잘 하시어 수놓는 것까지 정묘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특히 그림 솜씨가 비범해 일곱 살 때부터 안견의 그림을 모방해 산수화와 포도 그림을 그렸으니,

그 재주가 세상에서 견줄 바가 없었다.

 

신사임당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그림으로 <월하고주도>, <초충도>외 자리도 ,노안도, 연로도, 요안조압도 등이 있으며,

시로 강릉을 떠나 대관령을 넘어 서울 시가로 가면서 지은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領亡親庭)>과,

서울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지은 <사친(思親)>등이 유명하다.

 

참조   1. 이 글의 출처는 홍인희의 <우리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이다. 

        2. 찰방 : 조선시대 역참을 관리하던 종6품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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