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다.
왜냐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의 일을 결정하고 지켜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가 아닌 다른 많은 문제를 결정하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고독하다.
무엇을 결정한다는 것은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헤쳐 나갈 책임 역시 스스로가 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도,
쓰임에 맞게 나누기 힘든데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따라서 무엇을 결정해야 할 입장에 선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분명 외롭고 고독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요즘은 딱히,
경제적으로 어렵다거나 어디 아픈 것도 아닌데,
실상 점점 힘에 부치고 왠지 모르게 외롭다는 느낌을 실감하고 산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요즘 와서는 가능하면 신경을 덜 쓰고 살려고 노력한다.
억지로 무엇인가를 하려하면 오히려 도움이 되는것보다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시리 낭비를 줄인다느니 하면서 법석떨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이런다고 급작스럽게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님에도 너무 아등바등 거리다가,
오히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주변에서 죽음이나 병과 같은 워낙 갑작스럽게 생기는 일이 많아,
스스로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때문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스스로가 참 한심하게 느껴지곤 한다.
생각은 넘치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늘 한 곳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니 말이다.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이 넘치면서도 항상 일을 핑계로 떠나지 못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걸 팽개치고 떠날 수 있음에도,
떠나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는 삶이 주는 미련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마음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봄기운이 가득 넘치는 날에도 그저 머물러 있을 뿐이다.
나는 왜 이렇게 투덜거리며 사는 걸까?
이렇게 때때로 내가 살아가는 이유조차 모르고 그저 세월 속에 묻어가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렇게 때로는 삶의 의미가 모호해지고,
스스로의 인생이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감히 내가 아끼는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곁으로는 근엄한 척 애쓰지만,
마음으로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들을 지키는 작은 힘이 되고 싶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란 몫은,
그저 묵묵히 가족의 뒤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철없는 시절에는 <아버지는 왜 그렇게 사셨는지 모르겠어.>하면서,
융통성 없는 아버지를 꽤 원망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렴풋이나마 아버지의 그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다.
답답할 정도로 원칙을 지키는 융통성 없는아버지의 삶의 방식들이,
바로 우리를 지키는 버팀목이었고 사랑이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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