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번 주 토요일,
이종사촌형님의 맏딸 결혼식에 다녀왔다.
이종사촌형님 내외분들과는 그런대로 알고는 지내지만 그리 친한 편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이모부가 재혼하셨기에,
어머님과 멀어지다보니 아마 자연스럽게 친한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나 역시 이모님 댁을 방문한 것은,
86년쯤 소먹이용 옥수수 짚을 실려 찾아간 것이 전부다.
빙그레에 근무하사는 사촌형님도 내가 다니는 회사 근처 보관 냉동 공장이 있어,
오고가며 더러 뵐 수 있었지만 달리 만나 식사를 하거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솔직히 말한다면 주변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체면치레하고 온 것이 맞다.
아직도 장롱 어딘가에는,
결혼식 날 촬영한 비디오테이프가 깊숙이 간직되어 있을 것이다.
결혼식 날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 민망하기 그지없다.
내 딴엔 진장하지 않으려고 누군가가 건네준 껌을 씹다가 급히 입장해서,
결혼식 내내 껌을 씹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우물거리는 경직된 모습 때문에,
아내로부터 적잖은 핀찬를 듣기도 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결혼식 후 치르는 장난은 거의가 비슷비슷한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결혼했을 때가 더 심했는지도 모른다.
발바닥 때리기는 기본이고, 요즘도 하는 만세삼창이나 애국가 부르기,
신랑을 나무에 매달기에다 신부를 업고 일어서기 등,
<추억 만들기>라는 핑계로 때로는 다소 심한 짓도 했던 것 같다.
피로연 자리에서의,
낡고 오래된 구두에다 술 마시기,
겨란 노른자 터트리지 않고 신랑신부가 입안으로 나누어 마시기,
피로연 참석한 친구 모두가 원하는 것 하나씩 넣고 쌈을 싸서 안주 만들어 먹이기,
식초에다 국수 말아 먹이기 등등도 빈번히 즐겼던 것 같다.
피로연 자리에는,
늘 이런 짓궂은 친구가 사회를 보기 마련이라,
자신의 결혼식을 두려워했었던 기억들이 새롭다.
물론 지각없는 행동으로 다소 심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역시 어른이 되는 하나의 통과의례가 아닌가 싶다.
요즘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은 신랑신부의 얼굴을 보고 오는 사람조차 별로 없다.
대부분 혼주를 만난 뒤 축의금을 내고 피로연자리로 직행한다.
언제부터 결혼식은 일가친척과 신랑신부 친구들만의 자리로 변모되어 버렸다.
그래서 어쩌면 체면치레를 따지지 않는다면 진정 축하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조촐하게 치루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예전에는,
일요일 날 결혼식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즈음은 거의 다 토요일로 변한 것도 새로운 풍습일 것이다.
어째든 결혼식은,
새로운 시작이요 축복의 시간만큼은 틀림없을 것이다.
요즘은 황혼이혼뿐만 아니라 다툼이나 의견차이로 수많은 부부가 이혼의 상처를 안고 산다.
결혼식 주례의 단골 멘트인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서로를 위하고 살아라.>처럼,
이혼이라는 아품을 겪지 않고 일평생동안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사랑의 동반자로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