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난,
기념일을 챙기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다.
요즘은 기념일마다 무슨 이벤트니 하면서 요란을 떨지만,
어릴적부터 생일상이래야 기억조차 못하고 지나쳐버리기 일쑤였고,
어쩌다 챙긴 생일도 솥 한구석에 한 움큼 남짓한 쌀을 안쳐,
아버지와 생일 당사자만이 먹을 수 있었던 특별한 음식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무슨 기념일이니 하면서 요란 떠는 것에는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놓치면 왠지 서운할 것 같아 달력에 메모해놓고 잊지 않으려 한다.
결혼하여 지금까지,
집안의 대소사를 기억하고 챙기려 노력했다.
또한 지금까지 결혼기념일이나 아이들의 생일을 한번도 잊고 안 챙겨본 적도 없다.
특별하게 해주지는 못하지만,그래도 서로 기억하고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 하나라도 주고받는 것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돈이 없으면 마음이 담긴 편지라도 주라고 말해 주고는 한다.
딸이 고3이 아니었다면,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왔을 터인데,
우리 가족에게 10월은 유난스럽게 집안 행사가 많아 짬을 내기 어려운 달이다.
추석 명절에다 큰처남 장남 결혼식이 끼여 있고,
두 아이의 생일과 장모님, 큰 형님의 생일도 겹쳐 있다.
래저래 목돈이 들어가 조금은 힘겨운 한 달이다.
그래도 이번 20주년 결혼기념일은 의미 있는 하루였다.
일초가 아쉬운 딸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
아이스케잌과 <위로>라는 제목의 책 한권과 조용한 음악CD를 선물해 줘,
분위기 좋은 양식집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감미로운 행복감에 취할 수 있었다.
또 초등학교에 다니는 늦둥이 막내아들 녀석은,
용돈을 아껴 “아빠 엄마 사랑해요.” 란 문구가 들어간 예쁜 열쇄 고리를 선물해 줘,
우리를 기쁘게 해 주었다.
막내 녀석이 선물한 열쇠고리처럼,
우리가족 모두의 마음들이 하나의 고리로 엮여져,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그리고 묵묵함보다 서로 가슴을 열고 사랑의 말을 전허는 날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늘 내 곁에서 함께 어려움을 나눠준 아내에게,
20년 동안 나와 함께 해줘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