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내 나이에 맞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돈도, 품위도, 사회적 지위도,
나이에 맞게 살 수 있다면 내겐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하지만 나이만큼이라도,
속이 차면 좋은데 그렇지 못하고,
항상 기분에 취해 가진 것조차 지키지 못하여,
낭비하고 돌아서 후회하게 되는 것 역시 인생이 아닐까 싶다.
유아기 때는 먹고 성장하는데 충실하고, 청소년기는 공부하는 것에 충실하고,
장년기에는 인생을 살찌우는데 충실했어야 이 때쯤이면 나누는 삶을 살 수 있을 터인데 ,
아직도 난 내 것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람은 어디에 정착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도 달라지는 것 같다.
만일 나의 부모님이 농촌이 아닌 도시에 정착했었더라면 나의 삶 역시 훨씬 좋아졌을 것이다.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순하고 착하게 성장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을 보고 듣고 경험하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존재하고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그대로 자신감으로 이어지고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 앞장서기보다는,
뒤에 서는 사람으로 익숙해져야 했다.
그래서 지금도 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폐쇄적인 이 곳을 벗어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이 곳보다 변화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사는 대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싶은 희망을 갖지만,
그곳에서의 새로운 방식의 삶이 두려워 주저앉아 있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나보다 좀더 넓은 곳에서 넓은 시야를 가진 삶을 살기를 원한다.
물론 내가 바란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모르고 경험하지 못해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처럼 세상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세상속에 속해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으면 좋겠다.
주어진 울안에 살면 인간관계 형성은 물론 매사에 소극적으로 변하기 쉽다.
또한 지나친 보호본능으로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과 시기심을 갖기 쉬워 타협과 화합을 통한 조직의 힘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단체의 힘을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머리보다는 꼬리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삶은 공평하기에,
모두들 각자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다.
삶은 어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자신만의 고유의 영역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서로의 자리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로서의 자리, 어머니로서의 자리, 아이들로서의 자리 등등...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를 인정하고 존중해 줘야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갖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간섭보다는 믿음을, 충고보다는 대화를, 혼자보다는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다가온,
현상에 대해 판단할 때 자신의 입장에서 결정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좋아하고 손해가 되면 언짢아하게 된다.
세상일은 꼭 유.불리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젊어서 혼자일 때는,
우정이나 사랑 혹은 의리가 강해,
아는 사람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찾아가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만,
결혼을 하고 돈의 사용처가 어느 정도 정해졌을 때에는, 은연중에 유.불리를 따지게 되는 것 같다.
너무 자신을 좁은 틀에 가둬두려 하지 말라.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지우려고도 하지 말라.
생각이 좁으면 마음도 좁고, 마음이 좁으면 넓은 인생을 살지도 못한다.
인생에 한계를 두면 딱 그 한계만큼의 삶밖에 살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생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딱히 옳은 길도 없다.
그러므로 삶에 대한 결정은 신중해야 하나 한 번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그것이 잘못으로 판단될 때까지 결코 후회하거나 돌아보지 말라.
나이에 어울리는 삶을 사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자신이 머물려야 할 자리에서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말아야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을 지켜갈 수 있다.
그래야 그 속에서 기쁨도 느낄 수 있고 행복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멋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 때는 이미 조금은 늦었을지 모르지만,
아마 진정한 자신만의 인생이란 나이는 이 때서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었어도 다같은 어른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