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순 수

좋아한다는 것

소우(小愚) 2009. 7. 23. 13:12

 

     누구에게나 자신감이 넘치던  젊었을 때가  있을 것이다.

     여자에게나, 친구에게나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것들로 넘쳐났을 것이다.

     어머니의 자식자랑이나, 남편의 아내자랑처럼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졌을 것이다.

     자신이 아직 가지지 못한 수많은 것들을 외면한 채, 곁 멋이 넘쳐 외면에 치우친 채 우쭐거리고 다녔을 것이다.

     어쩜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주변 환경은 아예 고려대상이 되지도 않았으리라.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 좋아하기 때문에 상대방도 당연하게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렇듯 누구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인 것 같다.

    “내가 왜 좋지?” 하고 누가 물으면 쉽고 명쾌하게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좋아하는 감정은 처음 어떤 사물을 대하고 느끼는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좋아하게 되는 것은 시간의 길고 짧음과 무관하다.  

     각각의 생각과 행동에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다.

     웅장한 산을 좋아하고, 눈 내리는 바다를 좋아하고, 저녁노을 속에 세상이 잠드는 땅거미 지는 나지막한 고향 언덕을 좋아하고,

     안개와 별과 살랑거리는 바람, 이름모를 산골짜기에 쌓인 낙엽과, 계절의 전령사인 단풍들의 형형색색의 자태, 소담스런 눈송이와 설화 등...

     눈이 크고 긴 생머리에다 약간 창백하듯 소녀의 하얀 얼굴과, 마음 포근한 어머니를 닮은 여자에 대한 무작정의 믿음과 같은 것은, 

     좋아하게 되기까지 극히 짧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어쩜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이 옳다.

 

     누구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실망하는 법은 없다.

     역설적으로 누구를 진정으로 좋아한다는 것은 그 크기만큼의 미움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좋아하기 때문에 미워할 수 있는 것이며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도 하는 것이다.

     사랑이 지나쳐 집착이 되고, 사랑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해도 내게 오는 사랑에 대해 결코 거부할 사람은 없다.

     마음속에 한계를 지운 사랑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마음은 이미 중용이 아닌 한 쪽으로 마음의 저울추가 기운 것이다.

     억지로 이 감정을 현실에 맞출 때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는 것 같다.     

 

     새싹이 트는 사연은 낙엽이 질 때부터 시작된다는 옛말이 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세상일은 절정기가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사랑한다는 말보다 좋아한다는 말을 선호하는 이유는,    

     사랑은 어느 정도 단절을 의미하나, 좋아하는 마음은 영속성을 갖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딱히 반대급부를 원하지 않는 자신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노력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라 했다.

     상대방에게 대한 믿음은 극히 주관적이듯 누구를 좋아하는 것 역시 그렇다.

     누가 뭐라 해도 마음이 시켜서 하는 일만큼 세상에 즐겁고 행복한 일도 없는 것이다.

     누구를 진정 좋아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좋아하는데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없듯이 헤어짐도 언제나 그렇다.

     작은 다툼, 작은 오해, 자존심, 또는 역설적으로 너무나 좋아해서  등등... 기약할 수 없는 헤어짐은 모두 그렇다.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친구와의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은 가슴에 아픔으로 남는다.

 

     정이 머물다 떠난 빈자리는 언제나 공허한 바람이 분다.

     특히나 마음을 열어준 사람과의 이별은 다른 그 어떤 별리보다 가슴이 더 시리다.

     크게 고함이라도 치고, 큰 소리로 울기라도 할 수 있으면 속이라도 풀릴 터인데 너무나도 목이 메어 그러지도 못한다.

     하지만 우습게도 아무리 커다란 아픔을 간직했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옅어진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때때로 죽을 만큼의 절절한 사랑은 오히려 밋밋한 사랑보다 더 쉽게 잊혀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오히려 좋아한다는 것보다 실망하기가 더 쉬운 것 같다.

     누구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도 어색하고, 스스로 누구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행동하는 것, 역시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믿음은 극히 주관적이지만,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때때로 젊었을 때의 그 열정으로 돌아가 누군가를  간절히  좋아하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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