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영수생가-옥천사마소(15:40~16:20)
나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치고,
박정희대통령에 대해서는 고과 사를 구분해도,
그의 부인인 육영수여사에 대해서는 존경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런 사람중에 한명이라 옥천에 올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찾아가 보고 싶었던 곳이다.
육영수여사와 옥천사마소는,
도로를 경계로 하여 좌측은 옥천전통문화체험관과 육영수생가,
도로 우측은 조선후기 사마시 출신의,
젊은 유림들이 세운 교육시설인 옥천사마소가 있다.
육영수여사는,
육종관(부)과 이경령(모) 사이의 1남 3녀 중 둘째 딸이다.
1942년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옥천중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1950년 10월 12일 당시 박정희 중령과 결혼했다.
각 시·도에 여성회관을 건립하여,
여성의 사회 참여를 선도하고, 국민의 의식개혁에 앞장섰다.
특히 나병환자들을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세계적인 관심을 집중시켰다.
문화면에서는 청소년을 위하여 경로효친사상을 불어넣는 데 힘썼다.
어린이대공원의 조성과
육영재단을 설립하여 어린이회관과 어깨동무와 꿈나라 등을 발간했다.
또한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직업교육을 시킬 목적으로 정수직업훈련소를 설립했다.
1974년 8월 15일 광복 제29주년 기념식장(국립극장)에서,
북한의 사주를 받은 재일교포 문세광의 흉탄에 맞아 사망했다.
옥천의 육영수생가는,
옥천 구읍의 한옥 교동집은 육 여사가 나고 자란 집이다.
삼정승이 살았다 하여 삼정승 집이라 불린다
박대통령과 육여사 서거 이후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방치되어 오다가,
유족들이 건물을 완전히 철거하면서 생가는 기단, 초석과 함께 터만 남게 된다.
이후 옥천군에서,
2000년 9월, 육영수 여사 생가 복원계획을 세우고,
민간이 주체가 되어 육 여사의 회고에 근거해 복원했다.
총 26,400㎡에 대지 10,000㎡ 규모로 보통의 집 수준을 넘어선다.
솟을대문을 들어서서 오른편으로 마방이 있고,
대문과 마주 보는 곳이 사랑채이다.
사랑채 왼쪽에 건너채가 있고,
사랑채를 돌아 중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채가 집터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안채에서 왼쪽으로 행랑, 오른편으로,
연당사랑, 뒤로 돌아 별당, 후원에 사당과 정자가 있다.
집의 구조로 볼때 당시로서는 상류층의 규모 있는 살림집을 볼 수 있다.
사마소란,
16세기 초 훈구파들의 유향소 장악에 대한 반발로,
사마시 출신의 젊은 유림들이,
향권을 주도하려 세운 학문ㆍ교육기관이다.
옥천사마소는,
1987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654년(효종 5) 의창 건물을 헐어서 세웠다고 하며,
1674년과 1893년에 중수하였다.
본체 건물은,
정면 5칸ㆍ옆면 2칸의 홑처마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좌측부터 부엌, 온돌방 2칸, 마루 2칸을 두었다.
현판 沃州司馬所(옥주사마소)는,
옥천군을 옥주(沃州)라고 불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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