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할 때는 모두가 장밋빛이다.
그러나 사랑을 얻고 나면 점차 회색빛으로 물든다.
현실에 대한 책임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이지 않던 가시도 하나둘 보이고, 병든 잎사귀나 부러진 가지도 눈에 들어온다.
화사함에 가려졌던 것들이 마치 거울에 비쳐진 자화상인양,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이 속속들이 보인다.
그동안 알면서 혹은 몰라서,
또는 자의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감춰왔던 단점들이,
결혼이란 현실로 이어져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일상으로 이어질 때,
자신도 모르게 비틀거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도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함께 세월이란 파고를 겪다보면,
어느새 그냥 바라만 봐도 좋은 시간이 다가온다.
포장된 사랑은,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려한 깃털이나 변색으로 구애하는 새들이나 꽃들처럼,
자신의 사랑을 얻기 위해, 외형을 꾸미고 화장하는 것은,
바로 수컷의 본능일 것이다.
거짓이 아니라면,
당당하게 사랑에 맞서,
자신의 마음이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평생을 무조건 믿고 바라봐야 할 사람에게 최선을 다함은,
용기가 아닌 사랑의 본모습인 것이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사랑을 갈구할 때 바라보던 그 눈빛과 그 열정이 한결같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서로를 향하던 그 웃음과, 그 미소와, 그 마음이 사라진 삶의 끝자락엔,
허무와 쓸쓸함만 넘실거린다.
지루하게 이어졌던,
장마가 끝난 그 자리로 가을이 찾아왔지만,
난 언제나 후회와 아쉬움만 느끼는 것같다.
이 조차 삶이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많이 모자랐나보다.
오늘도 무의미한 하루가 지나간다.
가슴이 따뜻한 사랑의 말도, 감사의 말도, 들은 지도, 한 지도 언제인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웃음이 넘치고 행복한 순간들도 많았건만,
기억에 남아 있는 건 힘든 사건사고의 순간들 뿐이다.
그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난 아직도 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벗어던지지 못한다.
우린 왜 이렇게 불행한 기억들만 가슴에 껴안고 사는 것일까?
그냥 바라만 봐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가을볕에 주렁주렁 익어가는 과일이나 곡식처럼,
나의 품성이나 일상 역시 익어갔으면 좋겠다.
그동안 삶을 같이한 아내와 친구,
그리고 부모형제자매 모두, 걱정과 아픔보다는 웃는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가을 아침에 맞는 차가움보다는, 한 낮에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을 맞이하고 싶다.
어느 가을날에 문득 바라본 나는 아직 모자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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