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이 먹히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바로 말이다.
그런데 요즘 대한민국 남자는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말이 먹히지 않는다.
요즘 사회현상이라 하기에는 중년의 남자로써 산다는 건,
왠지 서글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내나 아이들과,
오순도순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대화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말다툼이 변질되곤 한다.
염려가 간섭과 충고가 되고, 사랑이 구속이 되기 십상이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잘하려고 노력해도 어느새 꼰대가 되어버렸다.
세상의 변화라고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왠지 그동안 삶을 부정하는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다.
가급적 말도 가려서,
좋은 말로 업무를 설명하고 협조를 구해도 늘 불만투성이다.
업무구분이 명확한 대기업도 아니고 잡다한 일을 다해야하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잡무는 오롯이 상사의 몫이다.
갑질이란 말은 요즘은 옛말에 불과하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주어진 역할을 하는 것까지 매도할 수는 없다.
먹고사는 문제에 어느 정도의 희생은 삶의 노력이지 일방적인 강요라 할 수 없다.
세상에 자신의 입장이나 관점에서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부당하게 느껴지는 일들이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무엇보다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기보다는 상생이 먼저다.
말도 힘 있는 사람의 몫으로 전락해버린 지 오래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소수의 의견으로 묻히기 십상이다.
옳지 않는 일이 정의가 되는 일이 벌어져도, 힘이 약하면 말할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힘이 약해서 억울하게 이용당해도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 할 곳도 없다.
차라리 말을 삼가는 것이 오히려 더 현명한 처세가 아닐까?
말은 나를 알리는 가장 강력한 표현 방식이다.
그러나 말은 한편으로는 분란과 오해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이심전심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도 있겠지만 말로 하는 것만큼 정확할 수는 없다.
특히나 사랑하나라든가 고마움과 감사함의 표현은 더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좋다.
마음으로 하는 백 번의 다짐보다 말로 하는 한번의 표현이 더 좋다.
일찍이 요즘처럼 말이 통하는 않는 경우도 없었던 것 같다.
말을 해도 그 말이 의미로 전달되지 않고 그저 허공에 맴돌다 사라진다.
그러다보니 말을 해놓고 도리어 민망하거나, “넌 왜 말을 안 해.”라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혹여 어쩌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도 만날라치면,
수다스럽다 느낄 정도로 말이 많아 스스로 무안스럽다.
말하는 사람보다 들어주는 사람이 그립다.
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향기를 억지로 맡을 필요도 없고, 이게 왜 예쁜지 알지 않아도 된다.
그 꽃이 지닌 전설이나 의미 혹은 꽃말 따위는 몰라도 된다.
그 꽃이 지닌 가시나 독을 경계하는 것도,
어쩌면 그 꽃을 어떻게 해볼까 하는 이기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꽃도 꺾는 그 순간부터 시들기 마련이다.
말도 마찬가지다.
무슨 말을 하는지만 헤아려도 무슨 문제가 있을까?
말의 의미를 찾고 해석하기보다는 말 그대로 듣고 따라주면 그만이다.
공연히 그 말에 자신의 생각을 얹어서 들으니까 말을 하는 당사자의 의도와 달라지는 것이다.
평소 꽃처럼 아름답고, 꽃향기처럼 달콤한 말만 하고 살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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