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위한 기도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 늘 기도합니다.
제발 오늘 하루만이라도 깊고 편안히 잠들 수 있기를 말입니다.
어른이 되면 잠이 없다란 부모님의 말씀이 진정 잠이 없어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삶에 대한 걱정이 불면이 된다는 사실을 ,
오십이 넘어서야 깨닫게 됩니다.
잡다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나쁜 일은 나쁜 일대로,
염려와 걱정이 되어 숙면을 방해합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숙면이 하나의 소원이 되어버렸습니다.
잠을 자다 불현듯 깨어나 두 번 다시 잠들지 못해,
날을 꼬박 새는 날들이 늘어만 갑니다.
무슨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부모와 자식은 물론 앞으로 살아가야할 남은 날들이,
왠지 걱정이 되어 사라지지 않습니다.
남들에게는 욕심을 버려라,
원망이나 미워하는 마음을 비워라 권하면서도,
정작 나는 그렇지 못 하는가 봅니다.
삶이란 다 그런 거지 하고 자위하면서도 말입니다.
늘 부족한 것이 삶인 줄 압니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면 왠지 그 부족함이 내게만 그런 듯 보입니다.
그동안 나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내 삶은 지금 행복하지 않을까요?
언제부터인가 감정이 메말라 즐겁거나 웃을 만큼,
감동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작아지는 날이 오늘도 더해집니다.
살아가면서,
세상이나 사람과의 타협만큼,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이유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들을 하는 것이니까요.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내려놓는 그 모든 것들도,
어쩌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저 세상을 더 편하게 살려는 세상과의 타협일 뿐입니다.
진정한 나를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요?
갈수록 마음의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아집니다.
어이없는 말을 들어도 화를 참아야 하는 날들도 늘어 갑니다.
그래서인지 저 혼자 울고 저 혼자 화를 내고 저 혼자 생각하고 저 혼자 잠들지 못합니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결론은 언제나 자기합리화로 끝납니다.
그렇게 마음으로 울 뿐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자존심도 없어야 한다.>란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은 내 삶의 가치요 살아가는 방식이며 의미이기 때문에,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란 무대에서 정작 주인공인 내가 사라진 그 세상이 내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죽음이란 단절에서 느끼는 허망함은 살아간다는 그 모든 의미를 잃게 합니다.
헛된 자존심으로 울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소연이고 원망입니다.
무심코 입에서 나온 말조차 남을 탓하는 말이 대부분이라,
흠칫 놀라 주위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어쩌다,
지인 몇 명만 거쳐도,
나 몰라라 외면할 사람이 없음에도 말은 늘 이성을 앞서갑니다.
나도 모르게 나를 스치고 간 사람들 간의 인연들이 이렇듯 나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소중한 인연은 칭찬과 감사와 고마움의 마음이 쌓여 됨을 기억합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인내와 양보의 시간입니다.
부디 내 삶이 내 인생의 굴레가 되지 않기를 오늘도 기도합니다.
'^*^ 낙 서 장 > 삶의 낙서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 (0) | 2017.02.07 |
---|---|
이번 설에는. (0) | 2017.01.25 |
인생은 살아갈수록 어렵다. (0) | 2016.09.23 |
도심 여름휴가 즐기기 (0) | 2016.08.04 |
내 삶의 하이에나 (0) | 2016.0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