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장모님 89세 생신이었다.
장모님은 개천절이었던 지난 3일 인천에 사는 처남들과,
설악산 단풍구경을 위해 내려오는 큰처형과 함께 동승하여 우리 집에 오셨다.
아마 장모님은 딸들 중에서도 강릉에 사는 막내딸인 나의 아내와 가장 잘 통하는 것 같다.
그리고 고향이라 왠지 편한 기분도 드시나 보다.
이번이 결혼 뒤 처음으로 생일상을 차려 드리는 것이라 조금은 신경 쓰인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신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항이지만,
연로하신 분들은 치아가 부실해서인지 이것저것 드실 수 없기에 가려야 할 음식도 많다.
그리고 때마다 맛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차려드려도 잘 드시지 않아 애가 탄다.
무엇을 해 드려야 할지 아내도 걱정되나 보다.
그래서 아침에는 간단히 생일상을 차려드리고,
저녁에는 장모님 모시고 장모님이 좋아하시는 감자옹심이 칼국수를 먹기고 했다.
햇살로 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이고, 소고기 전골에다 잡채는 물론,
방앗간에서 몇 종류의 떡도 준비했다.
그리고 아침 일찍,
미리 장봐두었던 재료들을 지지고 볶아 상차림을 한 뒤,
식구들이 모여 생신축하노래를 불러드렸다.
처음에는 “인천에서 먹었는데” 하시던 장모님도,
생일상을 받으신 후 기쁜 표정이 역역하다.
출근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오늘 근무가 끝나 퇴근하면서 아들을 태우고 집에 도착하자,
속초에 사는 처형이 강릉에 업무 차 들렸다고 한다.
서둘러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집 가까이에 있는 감자옹심이 집으로 갔지만 이미 늦었는지 깜깜하다.
할 수 없이 오늘은 즐겨 드시던 해물찜으로, 감자옹심이는 내일 점심에 드시기로 했다.
장모님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도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생선이나 회도 잘 안 드시고,
초당두부로 유명한 초당이 집 가까이 있어 두부전골이나 모두부를 사 드려도 그렇고,
산채백반이나 청국장과 같은 토속적인 것도 그리 좋아하시는 것 같지 않고,
생신이라 좋아하는 음식을 해드리고 싶은데 말이다.
어쩌다 퇴근길에 굽굽(출출)할 때,
드시라고 옛날과자나 맛있는 걸 사다드려도 도무지 드시지 않는다.
집에 들어와 모자라면 채워드리려고 살펴봐도 항상 어제 담아드린 그대로다.
이젠 마음 편하게 덥석덥석 드셨으면 좋겠는데 부모의 마음은 그렇게 않은 것 같다.
자식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부모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가 보다.
노인들이 다 그렇듯 장모님도 건강이 안 좋다.
물론 고령인 탓이기도 하지만 난청이고 무릎관절도 안 좋다.
그리고 올 초에는 피부암 수술로 병원신세도 져야 했다.
일찍 장인과 사별하고 홀로 사느라 고생만 하신지라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다.
사시는 동안만큼은 아프지 않았으면 싶은데 그러지 못해 뵈올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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