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삶의 낙서들

세상만사(世上萬事)

소우(小愚) 2014. 3. 4. 08:10

    세상만사는 아마 이런 것이 아닐 까 싶다

    세상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지만,

    그렇다고 삶을 포기할 수도 없는 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물론 <송골매의 세상만사란 노랫말처럼> 생각하기에 따라 달리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만사라 해도 내게 닥치는 순간부터 그것은 내게 의미가 될 수밖에 없다.

    아무 일 없듯이 지나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내 일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어떨 때는 눈에 보이는 뻔한 일이라도 그저 지나쳐주기만 바랄 때도 있다.

    하기 정말 하기 싫은데 나 아니면 안 되는 그런 외통 수 같은 일말이다.

    아마 누구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거의 모든 일들이 하나 같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아쉽지 않은 정말 다섯 손가락조차 채우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삶이기에 넘어가야 한다.

 

    아마 세상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면, 사진을 찍었을 때 세상과 하나인 듯 느껴지는 사람일 것이다.

    마치 함께 오래 산 부부의 모습이 서로 닮는 것처럼, 내게 어울리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이미 네모난 모양을 동그라미로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세상으로의 순응은 타협이 아닌 바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인 것이다.

    가진 자가, 힘 있는 자가 법대로 하자는 것만큼 잔인한 일도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나 젊어 한창 잘 나갈 때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잘 알지 못한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잘못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삶이 아닐 것이다. 

    후회하고 안타까워하고 원망하고 그리워해야 삶이다.

    우습게도 그렇게 간절했던 세상은, 세월이 지나 원망이 그리움으로 변해갈 때쯤에야 비로소 조금씩 볼 수 있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너와나의 생각이 아닌 공통의 생각에 부합되는 기준이다.

    그러나 삶이란 바로 나로 인해 생기는 현상을 의미하기에 그로 인한 결과 역시 내 몫인 것이다.

    삶의 합리는 행동은 <나>를 기준으로 삼고, 생각은 <너>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만의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조차 보게 될 것이다.

 

    살다보면 은(恩)도 쌓이고 원(怨)도 쌓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은(恩)을 갚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원(怨)을 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갚기도 하고 또 때로는 풀기도 하고 또 때로는 세월 속에 잊기도 해야 한다.

    가슴으로 간직하기도 해야 하며 아예 처음인 듯 넘어가기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세상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