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나의 명상록

버림의 미학

소우(小愚) 2013. 5. 9. 10:27

        ◇◇ 버림은 더 큰 것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나이가 들면 버려야 할 것이 많다.

        물욕이나 명예욕도 버려야 하고 심지어 이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도 덜어내야 한다.

        그렇게 버리고 버려서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상이나 사람에게 바랄 게 많으면 그만큼 세상이나 사람에게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세상이나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바라기보다는, 내가 세상이나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내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주변 사람들과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면 의외로 소통되지 않아 고생할 때가 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설명해도 자신의 입장에서만 말을 하니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이나 말은 아예 인정하려 들지 않으니 말이다.

        조금만 내 말을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하고 바라게 된다.

        아마 상대방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왜 이다지도 생각이 경직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공연히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거나 토라져 저 혼자 속상해서 어쩔 줄 모른다.

        그냥 넘어가거나 지나쳐도 될 일인데, 공연히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스스로 속 좁은 짓을 하는 것이다.

        조금만 대법해도 좋으련만, 언제부터인가 저 홀로 나이 먹은 척 충고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곁으로는 항상 유연한 척 받아들이는 시늉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버린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과 다르다.

        버린다는 것은 더 큰 것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사랑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소중함에 대한 아쉬움을 버리고, 가진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이다.

        버림으로 인해, 마음의 편안함과 소중함의 가치를 더 깊이 깨닫기 위한, 자신만의 마음을 수양하는 과정인 것이다.

        스스로 신념이란 벽을 허물어 새롭게 자아를 일깨우고 정립하는 마음과의 소통인 것이다.


        그러나 버린다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특히나 저 혼자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과 엮여있을 때 더 그렇다.

        혼자라면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으면 그만이지만, 그렇다고 소중한 사람들의 것마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혼자서 버티지 못할 정도로 어렵고 힘든 일에 처해도, 포기하기 못하고 마음을 추슬러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거칠고 척박한 땅에서 자란 나무일지라도,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듯이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나의 아내가 어디 볼 일이 있어 외출할 때마다 옷장을 열어보면서 항상 하는 레퍼토리(repertory)가 있다.

        그것은 옷장에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을 없다.>라는 말이다.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

        이처럼 옷장에는 그동안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쌓아놓은 수많은 옷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옷은 사연이나 추억이 깃들어서, 또 어떤 옷은 비싼 옷이라 혹시나 살이 빠지면 나중에 입을 수 있을까 해서 버리지 못한다.

        이렇게 혹시나 하고 보관하지만 결국 나중에는 입지도 못하고 버려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몸은 비록 비대해져도 욕심은 작아져야 한다.

        그래서 <법정 스님>께서는 <버리지 않으면 새 것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가득 찬 그릇일수록 비워야 또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듯이, 사람도 버림을 통해 새로운 것은 채워나가야 한다.

        그동안 삶을 통해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어도, 그것이 시대의 흐름과 맞지 않다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하나를 더 가져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것보다, 하나를 버려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음이 바로 버림의 미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