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 서 장/나의 명상록

신뢰가 깨지는 이유는 내 마음의 의심이 더 크다.

소우(小愚) 2012. 12. 6. 16:22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렇기에 가급적이면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이나 조직에 속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여러 가지 환경조건이 나름대로 자신에게 유리한 집단이 아무래도 활동하기에도 편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편리함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집단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결정되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뢰는 단지 정이라는 마음의 흐름이 아니라 그 집단을 유지하는 근본 바탕이라 할 것이다.


 가수 김국환이 부른 <타타타>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이 가사에서 나오는 것처럼 사람은 자신조차 <난 이런 사람이다.>라고 정확하게 정의내릴 사람은 없다.

 막연하게 상황에 따라 맞춰 <나는 이럴 것이다>라고 믿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러한 믿음이 자기만족이거나 진실이라고 여기는 착각 때문이기 쉽다.


 사람은 이처럼 스스로를 알지 못하기에 행불행이 교차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본래의 자신과 좀더 근접하게 아는 사람일수록 행복해 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고 반대일수록 불행에 가까울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살면서 더해지는 교육이나 지식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인격체기 쉽다.

 그래서 이러한 자아는 어느 정도 통제도 가능하고 이해도 가능할 런지는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누가 흔들지 않아도 본디 불안한 존재다.


 그래서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별 것도 아니고 그냥 넘어가도 될 만한데 그러지 못한다.

 가만히 있으면 공연히 뒤쳐지는 것 같아 스스로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내 마음으로 재단하고 내 마음으로 판단하고 내 마음으로 결정한 것들로 그 상황을 채우는 것이다.

 누군가에 대한 신뢰는 조건이 없어야 진정한 신뢰인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하는 일 모두는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

 말로 하는 약속이든 아니면 서류에 의한 계약이든, 또는 어떤 일을 함으로써 받는 대가 역시 근본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신뢰가 깨지는 것은 서로의 생각의 괴리에서 생기는 것 같다.

 이 일은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유익하고 정확한 일처리인데 하는, 또는 이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알 터인데,

 이상하리만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고 나만 손해를 보는 듯한 느낌말이다.


 그러므로 신뢰를 깨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공정하지 못한 처신이다.

 자신의 입장에 서서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계산적인 행동의 결과일 것이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내가 약간 손해를 본다는 가정 하에 처신하는 것이 어쩌면 더 마음 편한지도 모른다.

 조금 속은 상해도 이것이 상대적인 약자가 사화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처럼 신뢰는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신뢰는 먼저 나를 온전히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유․불리에 따라 행동방식이 다르고 작은 손해조차 감수하지 못하여서는 아무리 서로 노력해도 가까울 수 없다.

 함께 같은 길을 가기를 원하면서 상대방에게 험하고 구불구불한 길만 가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내가 좋은 신을 신고 있다면 기꺼이 상대방에게 곧고 평평한 길을 갈 수 있도록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이 정답이다.

 왜냐하면 신뢰는 누가 뭐라 해도 서로가 윈윈하는 것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