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서야...
그랬습니다.
결혼 후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단 한번도 만족스러운 날이 없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일하다, 달이 뜨고 별이 떠 땅이 안 보일정도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오는 날들로 나의 삶은 채워졌습니다.
그렇게 온갖 힘들고 궂은일을 해서,
얼마간의 돈을 벌면 사채 빚 감당하기에 바빴습니다.
또 농사가 잘 되어 남을라치면 그 돈이 재투자 되지 못하고,
손 벌리는 자식들 손에 건너가 우린 언제나 가난한 일상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꿈을 갖지 못하는 삶만큼 지루한 삶도 없을 것입니다.
한 해가 지나도 농사자금 때문에, 못사는 자식들 걱정에 지친, 부모님의 푸념을 들어야 했습니다.
오죽하면 내 식구래야 아내 한사람뿐이었지만, 신발 한 켤레,
옷 한벌 사다 주기 위해서도 거짓말을 해야 했으니까요.
나야 바깓일을 핑계삼아,
읍내에 나가 기분전환이나 할 수 있었으나,
아내는 첩첩산중 시부모슬하에서, 서툴기만 한 농사일을 돕기 위해,
아등바등 산 하루하루가 아마 힘겨운 삶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난 부모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 나만 그런 삶을 산 것은 아니었기에 핑계거리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 어찌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그 일상이 싫어 지금의 현실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막노동이라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부모님과 똑같은 삶이 싫어 떠났으면서도,
지금 난 한 치 오차 없이 부모님의 인생을 따라왔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부모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부모님만큼 자식들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도,
그리 많지 않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우리가 살았던 상황은 우리 집 뿐만 아니라 동네 전체가 그랬습니다.
오히려 자식들을,
학교나 도회지로 내보내지 않고,
농사에만 전력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그 동네에서 큰소리치고 삽니다.
당신보다 자식을 위해 살아간 삶이,
오히려 당신을 더 힘들게 했음을 이제는 가슴 깊이 깨닫습니다.
“아버지, 오늘은 힘들었으니까 일찍 들어가 쉬세요.”
“어머니, 힘들었죠. 고생 많았습니다. 제가 대신 할 깨요.”
그 당시 나는 왜 나의 힘든 것만 생각했지 부모님 역시 힘들어 한다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아니, 어쩌면 몰랐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하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을 잠 든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농사일에 매진하고도,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싫었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지나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뻔히 해결점이 보이는 것을 그 때는 왜 그리 몰랐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능력만 고집하지 말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주변의 사람을 찾아봐도 좋았을 것을 말입니다.
절박한 어려움이 닥치면,
자신의 처지만 한탄하는 근시안적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려울수록 냉정하고 다각적으로 문제의 해결점을 모색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렇게 지금은 보이는 것들이 그 때는 왜 그리 암담하게만 느껴졌을까요?
부모가 자식을,
슬하에서 떠나보내는 이유는,
그것이 옳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입니다.
그렇게 자식을 보내고 그리움에, 염려하는 마음에,
가슴은 야위어져갔을 것입니다.
자식에게 잔소리하는 부모의 마음이 사랑인 것처럼,
경우에 따라 홀대하는 듯 보이지만 그 조차 부모님의 애끓는 사랑입니다.
결국 부모의 그러한 사랑의 방식에 대해, 내 마음의 크기로, 내 입장에서 바라보기에,
늘 모자라게만 보이는 것입니다.
이제야 조금 보입니다.
삶은 그렇게 이어진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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